박현진 뉴욕 특파원
시기를 저울질하는 것은 바뀌는 SAT가 한층 쉬워질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현재 SAT에 출제되는 단어는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대학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 꽤 있을 정도로 난도가 높다. SAT를 주관하는 비영리 민간법인인 칼리지보드 데이비드 콜먼 대표는 “학생들이 고교 1학년 때부터 쓸데없는 곳에 너무 많은 노력을 허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교육정책을 설계하고 2012년에 취임한 콜먼 대표는 고교 교과과정에 충실한 방향으로 SAT 개편을 약속했다.
칼리지보드가 방향 수정을 한 데는 경쟁 대학수학능력시험인 ACT(American College Testing)가 결정적이었다. 대입 수험생들은 원하는 시험일을 선택해 둘 중 하나의 점수를 대학에 제출하면 된다. 그런데 ACT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들이 최근 급증해 지난해 처음으로 SAT 응시생(170만여 명)을 추월했다. 대학 수업을 받을 수 있는 능력에 초점을 맞춰 상대적으로 쉽게 출제되는 영향이 컸다. 대학들까지 SAT를 외면하기 시작하자 칼리지보드의 위기감은 극에 이르렀다. NYT에 따르면 미 대학의 20% 정도만이 SAT 점수를 적합한 평가지표로 보고 있다. 경쟁에 뒤처진 칼리지보드의 선택은 수십 년간의 자존심을 버리고 ACT를 따라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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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이런 경쟁 시스템을 도입하면 어떨까’ 하고 학생을 둔 몇몇 주재원에게 물었다. ‘순진하다’는 답이 돌아와 계면쩍었다. ‘지금도 사교육시장이 난리인데 더 부채질할 일이 있느냐’에서부터 ‘수십 년간 이어져온 정부 주도의 입시 시스템을 한순간에 바꾸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등의 다양한 이유가 쏟아졌다.
1970년, 80년대 경제개발의 원동력이 된 우수한 인적 자원을 키워낼 때 정부 주도의 대입평가 시스템이 큰 역할을 한 것은 맞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생존전략은 창조경제에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위에서부터 거세게 불고 있다. 틀에 박힌 입시 시스템을 통해 걸러진 대학생들이 과연 창조경제에 더 적합한 인재로 성장할까. 새로운 유형의 인재를 길러 내려면 뽑는 방식부터 변화를 줘야 한다. 너무 높은 곳에 매달려 있다고, 혹시 독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꼭 따야 할 열매를 하염없이 쳐다만 보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박현진 뉴욕 특파원 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