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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사는 되지 말자” 페북에 쓴 글 퍼져… 결국 사표

입력 | 2014-03-14 03:00:00

[말이 세상을 바꿉니다]<3부>키보드 위의 언어폭력
삶을 뒤흔드는 SNS 말말말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쓰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SNS에서 이뤄지는 소통은 대상이 한 명이 아니라는 점에서 얼굴을 맞대고 하는 대화나 통화, 문자메시지와는 성격이 다르다.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SNS를 통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소식을 주고받게 됐고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는 만큼 전파 속도도 빠르다.

SNS에는 말이 아니라 글이 올라가지만 의사소통 수단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다. 의도하지 않게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거꾸로 사소한 일로 상처를 입기도 한다.

대학생 이성남(가명·28) 씨는 지난해 11월 페이스북에서 탈퇴했다. 지난해 초 페이스북에 가입한 뒤 썼던 수백 건의 글은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이 씨는 아쉽다는 생각보다는 홀가분하다는 느낌이 더 컸다.

이 씨가 후배의 페이스북에 댓글을 단 게 화근이었다. 후배가 쓴 글은 ‘부모님이 아픈데 고향을 떠나 자취를 하는 나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해 속상하다’는 내용이었다. 이 씨는 공감하는 마음에 댓글을 달았다.

“우리 가족도 치매 걸린 할머니를 모시느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어.”

몇 분 뒤 휴대전화에 그 후배가 보낸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빠, 내 페북에 그런 댓글을 달면 어떡해!”

당황한 이 씨는 후배에게 일단 사과를 했지만 왜 화를 냈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후배는 왜 화를 냈던 것일까. 페이스북 친구는 아주 가까운 사이부터 상대적으로 덜 친한 지인, 심지어 만난 적 없는 사람 등 여러 종류로 구성된다. 따로 글을 감추기 위한 설정을 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쓴 글은 모든 친구에게 실시간으로 공개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지인들과 빠르게 소통하고, 더 넓은 인맥을 쌓을 수 있지만 덜 친한 사람에게 자신의 글이 노출되고 잘 모르는 사람이 댓글을 다는 경우도 생긴다.

이 씨의 후배는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이 남긴 댓글을 보고 불쾌함을 표시한 것이다. 이 씨는 뜻하지 않게 후배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도 상처를 입게 됐다. 전문가들은 얼굴을 보고 말을 할 때보다 SNS에 글을 올릴 때는 훨씬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류철균 이화여대 대학원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는 “같은 SNS에서도 개인적 공간으로 쓰기를 원하는 사람부터 공개 토론장으로 쓰거나 심지어 홍보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까지 다양한 무리가 섞여 있다 보니 갈등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상대와 상황에 따라 선의로 남긴 글도 상처를 주거나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 SNS 갈등이 일상생활에도 영향

SNS에서 아무 생각 없이 남긴 글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피해를 보는 사례도 있다.

김미영(가명·여·36) 씨는 페이스북 글 때문에 상사와 갈등을 겪다 지난해 말 8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지난해 초 자신의 상사와 언쟁을 벌인 김 씨는 그날 저녁 자신의 페이스북에 ‘후배 앞에서 혼내는 상사, 남 탓하는 상사, 이런 상사만은 되지 말자’고 글을 썼다. 평소에도 속상한 일이 생길 때면 페이스북에 자신의 심경을 남겼고 페이스북 친구들이 누른 ‘좋아요’와 댓글을 보고 마음을 달랬다. 자신의 페이스북을 보는 사람들은 모두 가까운 지인들이라 속내를 털어놓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글 내용이 회사 전체에 퍼졌고 김 씨와 다툰 상사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상사는 “나를 두고 한 말이냐”고 따져 물었다. 김 씨는 대답을 피했다. 상사와의 말다툼이 글을 올린 계기였지만 꼭 그 상사를 욕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페이스북에 자신의 심정을 적었을 뿐인데 왜 문제 삼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둘 사이의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상사는 김 씨의 업무를 후배들에게 넘기기 시작했다. 김 씨가 3개월 동안 출산휴가를 다녀온 뒤 업무에 복귀했지만 관계는 회복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사표를 냈다.

○ 감추거나 지우거나

류 교수는 “SNS에선 글이 유포되는 속도가 워낙 빠르고 유포 범위도 광범위해 사람이 통제하기 어렵다”며 “성급하게 올린 글, 알리고 싶지 않은 일이 유포돼 갈등을 겪는 사례가 자주 생긴다”고 말했다.

SNS를 통해 갈등이 빚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같은 SNS에 계정을 여러 개 만드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말 대기업에 취직한 백모 씨(28)는 입사하자마자 ‘회사용’ 페이스북 계정을 새로 만들었다. 기존 페이스북 계정에는 다른 기업에 지원했다 탈락한 얘기, 옛 여자친구 얘기 등 입사 전 자신의 과거가 담겨 있어서 회사 사람들과 친구를 맺으면 모두 공개될 게 뻔했다. “회사 사람들과 친해지려면 페이스북을 하는 게 필수지만 제 과거까지 알리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아예 SNS에서 자신의 흔적을 지우기도 한다. SNS에 남아있는 과거를 지워주는 디지털 기록 삭제 전문업체도 국내에 생겼다. 또 정말 친한 지인들끼리만 소통하는 ‘폐쇄형 SNS’나 글이 자동으로 삭제되는 ‘자기파괴형 SNS’를 이용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김호경 기자 whalefish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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