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다음 달 1일이면 발효 10년을 맞는다. 체결 당시 “칠레산 포도가 수입되면 다 망할 것”이라던 포도농가의 수입은 지금 두 배가 됐다. 거봉과 청포도 등 고품질 상품을 잘 키워 맛으로 경쟁한 덕분이다. 포도 농사가 망할 것으로 예상해 포도나무를 다 뽑고 다른 작물을 심었던 농민들은 다시 포도나무를 심었다. 농업 강국 칠레와 FTA를 맺으면 농업 연간 피해액만 2조 원이 넘을 것이라던 강성 농민단체와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 민주당 농촌 출신 의원들의 반(反)FTA 주장은 허구였음이 드러난 것이다.
FTA로 피해가 예상되는 분야에는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복숭아처럼 단 한 알도 수입되지 않았는데 미리 폐업지원금을 주고 나무를 베도록 한 과민 반응, 졸속 대응은 문제가 있다. 잘못된 예측으로 2400억 원의 폐업지원금만 날아갔다. 역대 정부마다 우루과이라운드 대비, 한미 FTA 후속대책 등의 이유로 농가에 엄청난 국고를 투입했지만 제대로 활용됐는지 의문이다.
올해도 농림축산식품부 예산 13조5000억 원 가운데 시설 현대화 지원금, 면세유 보조, 쌀 직불금 등 농민 보조금이 5조 원이나 된다. 이 중 상당액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나돈다. ‘다방 농민’(일은 안 하고 시골 다방에서 공무원을 만나 보조금만 타는 농민)이라는 말도 있다. 농업에서 살 길을 찾아온 ‘진짜 농민’의 의욕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치권은 FTA 얘기만 나오면 “농업이 죽는다”며 돈으로 보상하는 포퓰리즘(인기영합적) 정책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법과 제도로 농산물 경쟁력 강화를 뒷받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