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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조은수]유전자를 바꾸는 교육의 힘

입력 | 2014-03-06 03:00:00

같은 유전자-환경속 쌍둥이도 경험에 따라 유전자에 변화
모유수유도 배움이 필요한데 전문기술 -과학 교육에만 관심
비정규직 비율 OECD 1위 한국… 단순 노동의 질-가치 높이기, 현장 직업교육 더 강화해야




조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

3월 새 학기가 시작되고 온 나라가 새로운 배움의 에너지로 꿈틀거리고 있다.

‘본성인가 환경인가(nature or nurture)’라는 유명한 구절은 교육학 이론으로서뿐만 아니라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데 유효한 사고의 틀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천재는 천재로 낳아진 것인가 또는 그렇게 키워진 것인가.

물론 어느 한쪽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유전자도 좋아야 하겠지만 좋은 환경에서 잘 길러지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유전자의 영향 지수가 환경의 영향보다 약간 더 높다고 한다.

인지과학과 생명과학의 발달은 현재의 논의를 새로운 국면으로 가져왔다.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고 같은 환경 속에서 자란 두 쌍둥이도 인생의 경로가 갈라지기도 하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 각각의 유전자에도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현재 내가 겪는 인생의 경험들이 내 유전자를 바꾼다는 것으로, 환경이 본성을 지배하며, 본성의 결함은 환경에 의해서 극복될 수 있다고까지 넓게 해석할 수 있는 충격적인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발견이 가지는 사회적 또는 철학적 함의는 말할 수 없이 크다. 삶의 방식이 바뀌면 삶의 내용이 바뀔 수 있으며, 우리의 삶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존재란 계속 새로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이런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교육의 의미가 더욱 새롭게 다가온다.

필자가 17년 전 미국에서 겪은 개인적 경험 하나.

늦게 둘째 아이를 갖고 십여 년 전 첫아이 때 한국에서 실패하였던 모유 수유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드디어 출산의 날이 다가왔고 그 긴 관문을 무사히 통과하였다. 산모인 나와 아이는 고요한 장소로 옮겨져 그대로 잠에 들었다. 깨어났을 때 휴식을 취한 몸은 강한 생물학적 의욕을 느끼게 했다. 간호사는 이제 아기가 첫 식사를 할 때라고 농담을 하면서, 아기를 미식축구 공처럼 들더니, 엄마 가슴 쪽으로 천천히 스윙하듯 갖다 댔다. 엄마 젖 근처에 다가가자 아기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입을 짝 벌렸는데 그때 간호사가 매정하게 물리쳐 버리는 게 아닌가. 간호사는 그런 행동을 몇 차례 반복했고 배고픈 아기는 급기야 목젖이 다 보일 정도로 큰 울음을 터뜨렸다.

간호사는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재빨리 아기를 엄마에게 돌진시켰다. 한입 가득 엄마의 젖무덤을 물고 엄마 몸에서 나온 젖을 꿀꺽 삼킨 아이는 그 후 마치 그것이 본성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모유를 먹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간호사의 행동이 없었다면 아이는 엄마의 젖꼭지만 물고서 빨게 되고 계속 그 습관이 반복되면 젖을 물리는 엄마는 아파서 고통받고 아기는 모유가 부족해 불안한 유년기를 보낸다는 것이었다.

당시 짧지만 진한 경험을 통해 나는 일생일대의 큰 깨달음을 얻었다. 우선, 엄마는 바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계속 배우고 노력해야 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었다.

수유(授乳)라는 간단한 일에도 원리가 있고 교육은 이것을 잘 가르쳐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체계적인 배움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 배운 기술은 깊은 인식과 진한 경험을 가져오며, 결국 모성은 더 풍부해지고 아기와 엄마 간의 연대도 더욱 강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우리는 전문 기술, 고도의 과학에서만 교육을 말한다. 그러나 젖을 먹이는 법도 배워서 하면 더 잘할 수 있다. 계측되고 수량화되고 특정 범주의 지식에만 적용하는 교육이라면 우리 교육관의 첫 단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식의 서열화가 그러한 교육관 속에 들어있다. 그러한 사고방식 속에서는 어떤 종류의 일들은 하찮은 일로 소외된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 공사장에서 양편에서 오는 차를 차단하기 위해 깃발을 흔드는 사람은 어떤 훈련을 거쳐서 그 일을 시작했을까. 맞은편에서 오는 운전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표정을 만들고 적절한 거리에서 특별한 형태로 깃발을 흔듦으로써 가장 효과적으로 통행 흐름을 유도하는 방법을 배우고 실습하는 기회들이 과연 주어졌을까.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라고 한다. 여성과 고령자의 비정규직 비율도 계속 늘고 있다. OECD는 ‘직업교육을 확대하라’고 조언한다. 노동의 질을 높이고 그것의 전문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교육’ 말이다. 교육 현장은 교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조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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