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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남극의 선물… 100만년 비밀 담긴 얼음으로 온더록 한잔

입력 | 2014-03-01 03:00:00

3000m속 얼음시추가 연구 핵심… 장보고, 최종 3단계의 베이스캠프
얼음활주로 쓰는 외국기지와 달리… 장보고 지척엔 암반활주로 터
美-中에도 도움 줄 허브기지 기대




두께 2∼2.5m가량의 얼음을 깨면서 화물선을 인도하고 있는 아라온호(왼쪽). 장보고 기지 건설 자재와 장비를 옮기기 위해 아라온호는 무려 6.5km나 이런 얼음바다를 헤쳐나가야 했다. 임완호 다큐PD 촬영

아라온호 승선까지 포함해 남극에 머무는 2주일 동안 가장 ‘호사’를 누렸던 순간은, 바로 위스키에 남극얼음을 채워 마시던 때였다. 언젠가 일본에서 ‘위스키 온더록(on the rock)’용 얼음을 놓고 ‘북극 얼음이냐, 남극 얼음이냐’ 하는 판촉 전쟁이 벌어졌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그렇지 않아도 호기심을 품고 있던 터였다.

물론 극지연구 선진국들처럼 빙원(氷原·ice sheet)을 시추해 2000∼3000m 아래 얼음을 채취한 건 아니다. 만약 그런 얼음으로 위스키를 마셨다면 ‘세계적인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혓바닥처럼 바다로 뻗어나간 아이스 텅(ice tongue)에서 캐낸 얼음이라곤 해도, 남극 얼음은 예사롭지 않았다. 유리잔을 귀에 갖다대니 얼음이 녹으면서 기포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탁, 탁’하고 짧게….

이 기포가 바로 지구 기후변화의 표지자(marker) 역할을 한다. 최근 100만 년 동안의 기후변화를 추적하는 가장 정밀한 자료는 남북극 얼음, 특히 남극 얼음에서 얻는다. 그중에서도 로버트 팰컨 스콧이 탐험했고, 장보고 기지와 가까운 동남극의 얼음은 약 100만 년에 걸쳐 형성된 것이다. 북극 그린란드 얼음의 나이는 약 11만 년 정도.

김예동 극지연구소장은 “선진국들이 남극 얼음 속의 공기로 지난 65만 년간의 기후를 분석한 결과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평균 180∼220ppm이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400ppm”이라고 말했다. 세계 각국이 비용을 마다하지 않고 남극대륙 얼음시추에 열을 올리는 이유도 바로, 가장 오랜 기간의 기후변화 기록을 얻기 위해서이고, 이게 바로 최신 남극 연구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남극대륙 심부(core)의 얼음 시추는 두께가 최소 3000m 이상인 빙원에서 한다. 그런 심부는 통상 해안에서 1000km 이상 떨어진 내륙에 있다. 정부가 장보고 기지 준공과 함께 내륙의 제3기지 건설 준비에 착수한 것도 그 때문이다. 사실 장보고 기지는 3단계로 이뤄진 극지종합계획의 2단계에 불과하다. 3단계 등정을 위한 전진기지요, 베이스캠프다.

하지만 ‘정상 정복’은 지난한 일이다. 우선 장보고 기지가 있는 테라노바 만 연안은 북빅토리아랜드 동쪽 해안가다. 서쪽으로는 남극종단산맥을 접하고 있어 가파른 경사를 따라 올라가야 동남극 빙원에 다다른다. 제3기지 건설에 앞서 등판 경사가 완만하고, 크레바스가 적은 지역을 따라 빙원에 도달하는, 이른바 ‘코리안 루트’ 개발을 선행해야 한다.

동시에 비행기 활주로가 있어야 한다. 기가 막히게도 장보고 기지 바로 뒤편,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에 길이 1.8km 폭 70m의 육상(암반) 활주로 터가 있다.

남극에선 대부분 얼음활주로를 쓴다. 상주기지로 여름엔 평균 1200명이 머무르는 인근의 맥머도 기지(미국)도, 하계에만 운용하는 마리오 추켈리 기지(이탈리아)도 마찬가지다. 한국해양연맹 부총재이자 장보고 기지 부두 공사를 맡은 남경토건의 이동화 대표는 “장보고 기지가 ‘명당’인 이유 중 하나는 대륙에서 유일하게 암반 활주로 터를 지척에 두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보고 기지의 첫 월동대원들. 15명의 대원들은 혹한과 극야를 이기며 12월까지 월동생활을 해야 한다.

작년 말 항공망 구축 5개년 계획안을 입안한 극지연구소 대륙기지사업단의 정호성 책임연구원은 “(활주로가 완성되면) 현재 여름 두 달로 제한된 하계 연구기간이 130일로 늘어날 뿐 아니라 장보고 기지가 빅토리아랜드 및 로스 해 연안 각국 기지들의 허브 역할까지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남극 선진국을 따라잡고, 국가 위상을 높이는데 ‘암반 활주로’만 한 카드가 없다는 것이다.

각국의 공군기 외에 남극 상업항공사로는 가장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ALE사는 최근 “활주로가 확보되면 일류신Ⅱ-76을 띄우고 싶다”는 의향을 보이기도 했다. 일류신은 미군 수송기로 많이 사용되는 허큘리스보다 수송능력이 3배나 되는 대형제트기다.

사실 암반 활주로 건설 구상은 우리보다 이탈리아가 앞서 있다. 이탈리아는 프랑스와 공동으로 내륙기지를 보유하고 있는 남극선진국. 하계 전진캠프로 쓰고 있는 마리오 추켈리 기지는 장보고 기지에서 8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입지 여건이 비슷하다. 그래서 추켈리 기지 부근에 해빙(海氷) 활주로를 만들어 쓰면서도 암반활주로 건설을 준비해왔다. 남극이사회격인 남극조약협의당사국회의(ATCM)에 의향서까지 제출해놓은 상태다. 동시에 뉴질랜드에 항공기 투입 협력을 제안해 놓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찜’만 해놨을 뿐 아직까지 구체적인 실행계획은 내놓진 못하고 있다.

장보고 기지 준공식 참석을 마치고 웰링턴을 방문한 강창희 국회의장에게 뉴질랜드의 카터 국회의장이 “뉴질랜드와 남극을 오갈 수 있도록 장보고 기지 부근에 제2의 활주로를 건설해 달라”고 요청한 것은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뉴질랜드가 왜 이탈리아가 아닌 우리에게 이런 협력제안을 하는 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추켈리 기지는 하계에만 운영하는 기지라 안정적인 파트너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보고라는) 상주기지를 갖게 됐을 뿐 아니라 마인드가 비슷한 한국이 활주로를 구축하면 그들의 북빅토리아랜드 진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아시다시피, 뉴질랜드는 북빅토리아랜드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나라거든요. 우리도 좋습니다. 뉴질랜드 공군기 운항을 비롯한 지원협력을 이끌어내는 한편 이 지역에서의 연구 활동 주도권도 쥘 수 있습니다.”(극지연구소 관계자)

미국 역시 장보고 활주로가 건설될 경우 맥머도 기지의 비상활주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국도 ‘인익스프레서블 아일랜드’에 제5기지를 구축하면 항공수송은 장보고 활주로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변수가 없지는 않다. 박근혜 정부 들어 북극해 개발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제2 아라온호’ 건조가 시급한 상황인데, 그동안의 예산 배정 관행을 볼 때 국회가 과연 ‘배와 활주로’를 모두 지원해주겠느냐는 의구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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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온호 건조 비용이 대략 1000억 원, 장보고 기지 비용 역시 1000억 원을 조금 넘는다. 5년 프로젝트인 활주로 건설 예상 비용은 500억 원가량.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천이 월미도와 인근 차이나타운의 관광활성화를 꾀하겠다며 2010년부터 ‘월미은하레일’ 건설에 들인 공사비만 850억 원이었다. ‘대표적인 예산낭비 사업’이라는 비난과 부실공사 시비 끝에 최근 레일바이크로 재활용한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기존 레일 철거에만 250억 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그런 ‘뻘짓’에 1000억 원이 넘는 돈을 쓰면서 꼭 필요한 활주로 하나 못 만든다는 말인가!

장보고 기지=김창혁 전문기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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