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와 작은 밥집]<1>서울 청진동 무명식당
[1] 작지만 뚝심있는 철학으로 밥을 짓는 무명식당. [2] 스페인 마드리드 레스토랑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송하슬람 셰프.(왼쪽) [3] 잡곡밥과 감칠맛 나는 반찬으로 구성된 무명밥상.(8000원)
‘착’ 하고 자리에 앉으면 ‘탁’ 하고 놓이는 쟁반. 그 안에 놋수저 또는 나무수저와 함께 밥과 국, 그리고 반찬 몇 가지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런 모습은 한 상 가득한 반찬과 숟가락 여러 개가 한 곳으로 드나드는 찌개문화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굉장히 낯선 모습일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밥은 반찬이나 일품요리를 거들던 한낱 ‘공깃밥’이 아니다. 스테인리스 밥공기가 아니라 예쁜 사기그릇에 담겨 당당히 미를 뽐내는, 차원이 다른 밥이다.
작년 가을 한적한 서울 성북동 자락에 조그맣게 문을 열어 점심과 저녁시간 주변 직장인들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는 ‘무명 식당’을 소개한다. 이 식당은 곧 서울 청진동 그랑서울에도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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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건강한 제철 재료를 활용한 깔끔한 국과 반찬, 전국 각지의 유명한 젓갈들을 산지에서 받아 맛있게 지은 밥과 조합한다. 대신 아주 간결하게 하나의 쟁반에 그 감성과 맛을 담아낸다. 특히 파래장, 약고추장, 버섯비빔장 등 밥과 어울리는 장을 새로이 만들어 응용하는 점은 무명식당의 가장 큰 차별성이라고 젊은 셰프 송 하슬람 씨는 말한다.
송하슬람 셰프는 한국조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장군 조리병으로 군복무를 마친 뒤 인구밀도 대비 미슐랭 별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미식도시인 스페인 산세바스티안으로 무작정 떠났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수베로아(Zuberoa)를 비롯해 마드리드 라팔로마(la paloma) 등에서 근무했다. 해외 생활을 할수록 자국의 음식과 문화를 자랑스러워하는 스페인의 식문화에 많은 자극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어느 날 스페인 주방 셰프와 직원들끼리 와인과 치즈를 먹으면서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와인 맛이 떫다’, ‘향이 좋다’, ‘치즈가 숙성이 잘됐다’, ‘조금 덜 됐다’ 등 의견을 나누는 모습을 봤다고 한다. 송 셰프 역시 그 당시에 그 의견에 동조했다. 그런데 나중에 혼자서 테이스팅을 할 때에는 아무리 먹어도 그 차이점을 스스로 인지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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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식당은 작지만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식문화를 주도해가는 곳이다. 무엇이든 변화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전국에 숨겨져 있는 무명의 것들을 이끌어내 그 가치를 빛나게 해주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고, 그는 오늘도 건강한 밥을 짓고 있다.
김혜준 샘표 장프로젝트 컨설턴트
▼ “셰프의 철학과 인생이 녹아있는 맛집 소개” ▼
‘셰프와 작은 밥집’ 집필 김혜준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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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컨설턴트는 작은 프렌치 레스토랑 홀 매니저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르꼬르동블루 숙명아카데미’에서 제과를 공부했다. 이후 줄곧 외식업계 현장에서 일해 왔다. 그러는 동안 늘 좋은 식재료와 올바른 철학, 정직한 제품을 목표로 작은 가게를 꾸려가는 이들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3년여 동안의 취재를 바탕으로 윈도 베이커리(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팽창제나 유화제를 사용하지 않고 양질의 식재료로 당일 판매할 양의 빵만을 생산하는 오너 셰프의 업장)들을 소개한 ‘작은 빵집이 맛있다’는 책을 쓰기도 했다.
올해부터 우리 전통 장을 어떤 다양한 요리법에 활용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는 샘표 장 프로젝트팀에 컨설턴트로 합류하면서 작은 밥집들에 대한 그의 애정과 관심은 좀 더 구체화됐다. 장과 요리의 새로운 접목을 연구하기 위해선 철학을 가진 뚝심 있는 셰프들의 조언이 필수적인데, 그가 팀에서 각지의 셰프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됐기 때문이다.
김 컨설턴트는 “많은 현대인들에게 정성과 철학이 담긴 ‘맛있는 한 끼’가 얼마나 큰 에너지와 기쁨을 주는지 잘 알고 있어서 이번 연재가 더 기대된다”며 “앞으로 단순히 맛있는 밥을 내어주는 식당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들의 철학과 인생까지 녹아들어간 ‘제대로 된 한 끼’를 만드는 곳을 하나씩 소개하겠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