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경춘선 금곡역 역사 그대로… 교회 예배당 만든 박영환 목사“쉬다 가세요… 하나님 사랑은 덤”
5일 경기 남양주시 옛 금곡역 성시교회 앞에서 박영환 목사(가운데) 가족과 ‘팝 잉글리쉬’ 동호회 회원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폐역에 들어선 이색 교회가 입소문을 타면서 금곡역의 추억을 간직한 사람들과 철도 동호회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남양주=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문 입구에 ‘성시교회’라고 쓰여 있다. 최근 이곳에서 만난 박영환 담임목사(58)는 들어오길 망설이는 사람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예수님 믿으란 소리는 절대 안 해요. 부담 갖지 말고 그냥 쉬다 가세요.”
2010년 12월 경춘선 복선전철 개통으로 경기 남양주시 금곡동의 옛 경춘선 금곡역은 폐역이 됐다. 3년여간 방치됐던 이 역사는 지난해 11월 교회로 바뀌었다. 폐역이 교회로 변신한 첫 사례다.
박 목사는 2006년부터 7년간 금곡역 인근 대형 상가 건물에서 목회를 했다. 그는 “꼬마들이 ‘똥침’을 놓고 장난도 칠 수 있는 격이 없는 교회를 만들고 싶었지만 상가 교회에는 예배가 없으면 신자들이 잘 찾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때 그의 눈에 폐역이 들어왔다.
“역사를 교회로 바꾸면서 원형을 최대한 보전하려고 노력했어요. 간이역에서 사람이 쉬었다 가듯 누구나 차 마시며 책도 읽는 문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폐역이 된 금곡역은 한때 10대 비행 청소년들의 차지였다. 유리창은 죄다 깨졌고 담배꽁초와 술병, 쓰레기가 나뒹굴었다. 박 목사는 “교회로 바뀐 뒤에도 청소년들이 역 주변에 찾아오곤 했다. 처음에는 아지트를 빼앗겨 기분 나빠 하더니 컵라면을 끓여주고 이야기도 들어주니 누그러졌다”고 했다.
교회에선 매주 ‘팝 잉글리쉬’ 회원들이 모여 노래 연습을 한다. 이날 만난 회원 5명 중 이 교회 신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김영원 씨(56·여)는 “일요일에는 성당에 나가고 주중에 영어 노래를 배우러 여기 온다”고 말했다.
속도 경쟁에서 밀려난 기찻길에는 봄이면 더 느린 자전거도로가 들어설 예정이다. 수많은 자전거족을 두고도 전도의 의무를 참을 수 있을까. “그저 쉬었다 가면서 은은한 하나님 사랑을 느끼고 간다면 그걸로 족해요.”
남양주=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