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스포츠동아와 인터뷰 하고 있는 박은선. 합천|남장현 기자
여자축구선수 박은선(28·서울시청·사진)은 작년 말 유명세를 탔다. 차마 언급하기도 부끄러운 성(性) 정체성 논란이었다. 청소년 선수시절부터 출중한 실력을 발휘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지만 180cm, 74kg(공식 프로필)의 당당한 체구와 보이시한 외모도 항상 화젯거리였다. 그래도 박은선의 성 정체성이 공론화된 적은 없었다.
그러다 지난 시즌 박은선이 좋은 활약을 펼치자 소속 팀 서울시청을 제외한 여자실업축구 WK리그 감독들이 박은선의 성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무기로 삼은 건 ‘2014시즌 리그 보이콧’이었다.
이들은 과거 수년간 박은선을 지켜봤던 어른들이었다. 대부분 구단과 상의도 없이 민감한 ‘리그 보이콧’을 제기했고, 그 중 한 명은 대한축구협회 이사 직함을 갖고 있어 충격은 더했다. 파장도 엄청났다. 사회적 이슈가 됐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안건이 다뤄졌고,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가 진행 중이다.
논란을 일으킨 당사자들은 계속 침묵하고 있다. 심지어 서울시청 서정호 감독이나 여자축구연맹을 통한 사과도 없다. 인권위원회 발표(3월 초 예정)를 보고 대응하려는지, 그저 상황이 흘러가길 바라는 것인지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다. 물론 사과할 요량이었다면 진작 했어야 했다. 이젠 사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너무 늦었고 용서를 구하기도 어렵다.
차마 기사에 담을 수 없는 대화까지 나누느라 예정보다 훨씬 길어졌던 박은선과의 인터뷰가 끝난 뒤 그는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오히려 자신이 “미안하다”고 했다. 대상은 두 군데로 향했다. 한 쪽은 자신에게 깊은 생채기를 남긴 감독들이었다. “이렇게 안 좋은 상황이 돼 우리 가족 못지않은 상처를 감독님들과 가족들이 받았을 것 같다.”
또 다른 쪽은 여자축구였다. “나로 인해 우리 여자축구가 아주 이상하게 포장됐다. 이번 일이 터진 뒤 일부 팬들이 ‘이참에 여자축구 없애라’는 의견을 내세우는 걸 보고 울어버렸다.”
무책임한 지도자들보다 박은선의 태도가 훨씬 진지했고 어른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