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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恨 나눔으로 승화… ‘진짜 富者’ 떠나다

입력 | 2014-01-27 03:00:00

황금자 할머니 끝내 별세




1월 25일자 3면 보도.

26일 오전 1시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할머니의 손발이 갑자기 차가워지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식은땀도 흘렸다. 맥박이 분당 40, 30으로 떨어졌다. 옆에 있던 간병인들이 손을 붙잡고 “할머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라며 애타게 불렀다. 할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그렇게 20여 분이 지났을까. 가쁘던 할머니의 호흡이 조용히 멈췄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황금자 할머니가 26일 향년 90세로 별세했다. 가족이 없는 황 할머니와 2003년부터 인연을 맺은 뒤 양아들 역할을 해온 서울 강서구청의 김정환 복지팀장(오른쪽)이 상주를 맡아 서울 이대목동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지키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13세 때 일본군에 끌려가 간도 지방에서 위안부로 피해를 입고 살아온 황금자 할머니가 26일 별세했다. 향년 90세.

생전에 한이 많으셨는지 할머니는 떠날 때 미처 눈을 감지 못했다. 할머니를 친어머니처럼 모셨던 김정환 강서구청 복지팀장(49)이 뒤늦게 도착해 눈을 감겨 드렸다.

황 할머니는 폐품 수집과 식모살이 등을 하며 돈을 모아 2006년부터 3차례에 걸쳐 총 1억 원을 강서구 장학회에 내놓았다. 자신이 죽고 나면 남은 예금과 임대아파트의 임차 보증금 등 3000만 원마저 내놓겠다며 ‘마지막 선물’도 준비했었다.

본보 기자는 15일 병실에 누워 있는 할머니를 만나 그의 선행을 25일자 3면에 보도했다. 당시 할머니는 말은 못 했지만 “할머니의 나눔에 대해 알리고 싶다”라고 얘기하자 고개를 돌려 기자를 올려다봤다. 눈빛이 맑았다. 이야기를 듣는 중간 중간 할머니는 큰 숨을 여러 차례 내쉬며 대답을 대신했다.

김 팀장은 “행여 동아일보 기사가 나가기 전에 돌아가실까 봐 마음을 졸였다”며 “25일 누워 계신 할머니께 기사를 읽어 드렸다. 기사를 못 보고 가셨다면 정말 속상해하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 할머니가 생전 즐겨 하던 말은 “사랑한다. 고맙다. 보고 싶다”였다고 한다.

빈소가 마련된 이대목동병원 장례식장. 연분홍 블라우스에 갈색 겉옷을 차려입은 할머니의 영정은 간병인들이 할머니 앨범에서 찾았다. 간병인 김만심 씨(62)는 “최근에 찍은 영정은 너무 아파 보이셔서 고운 사진으로 찾았다”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인들이 보낸 조화가 여럿 왔고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오후 8시경 직접 조문을 했다. 김 대표는 “최소한 주한일본대사라도 할머니 앞에 와서 머리를 숙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손영미 소장은 “할머니들이 (황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듣고 가슴 아파 하셨는데, 다들 건강이 불편해 못 오셨다”며 “생전에 일본 정부로부터 사과를 못 받고 떠나셔서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로써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중 생존자는 55명으로 줄었다.

할머니의 가족은 없었지만 시민들의 조문이 줄을 이었다. 지난해 할머니 장학금 200만 원을 받아 학자금 대출 이자를 갚았다는 대학생 이진혁 씨(26)는 “아프실 때 못 찾아봬 죄송하다”며 “할머니가 주신 장학금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도 애도 물결이 이어졌다. 가수 이효리는 트위터에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란 글을 올렸고, 가수 JK김동욱도 트위터에 ‘황금자 할머님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지난 과거의 아픔들을 치유할 수 있는 행복한 곳에서 편히 쉬시길’이란 글을 올렸다.

강서구는 할머니의 장례를 구민장으로 치를 계획이다. 영결식은 28일 오전 10시 강서구청 주차장에서 하며 장지는 경기 파주시 삼각지성당 하늘묘원이다.

강은지 kej09@donga.com·조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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