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 논설위원
홍릉 부근에는 1970년대 대한민국의 성장을 이끌던 싱크탱크가 많았다. 서울시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국책연구기관들이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용지 활용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2년 전 이명박 정부는 이곳에 글로벌 녹색성장단지를 조성한다고 밝혔으나 지금은 주춤한 상태다. 원점에서 새로 논의해야 할 판이다.
홍릉에 근거지를 둔 KIST는 고령화시대를 맞아 ‘안티에이징’(노화방지) 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 부근에는 고려대 의대와 경희대 한의대·약학대·의과대 등이 몰려 있고 생명공학이나 의료기기 관련 벤처업체들도 많이 입주해 있다. 입지로만 보면 융·복합산업인 의료관광산업의 성장 벨트로 충분히 키울 만한 곳이다.
홍릉 밸리가 그의 구상대로 ‘K-메디컬’의 전진기지가 되려면 선결 과제가 많다. 우리 의료기술은 세계의 톱클래스에 오른 분야가 적지 않다. 의료수가도 주요 선진국에 비해 저렴해 경쟁력이 있다. 그러나 의료관광을 주력산업으로 삼고 있는 태국 인도 싱가포르 역시 수가는 저렴하면서 의료기술의 수준은 높다.
무엇보다 우리는 교통 숙박 관광 통역 등 비의료서비스 분야의 인프라가 열악하다. 인도는 민관합동특별팀까지 구성해 의료관광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태국 인도 싱가포르와의 경쟁에서 우리가 뒤질 수밖에 없는 요인이다. 세 나라와 경쟁하려면 인프라 구축과 함께 의료관광 활성화를 막는 규제부터 혁파해야 한다.
의료관광은 갈수록 자본집약적인 산업으로 변하고 있다. 경쟁력을 갖춰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려면 수천억 원 규모의 투자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대형 병원들은 이런저런 규제에 발이 묶여 있다. 의료관광 활성화에 도움이 될 입법 추진은 야당의 반대에 가로막혀 있다. 제대로 경쟁이 될 리가 없다.
우리나라의 외국인 환자 유치는 태국 인도 싱가포르의 10∼20% 수준에 불과하다. 부유한 중국의 의료관광객들을 서울로 끌어들일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의료관광산업은 부가가치와 일자리 창출 효과가 매우 크다. 2020년까지 의료관광객을 100만 명으로 늘리면 6조 원이 넘는 수입과 21만 명의 일자리를 확보할 수 있다고 한다.
의료관광을 지원하는 인프라와 기반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급한 것은 민간병원들이 자유롭게 뛸 수 있도록 발목 잡는 규제부터 풀어야 한다. 시민운동가에서 행정가로 변신한 박 시장은 서생(書生)의 문제의식과 상인(商人)의 현실 감각을 체득한 사람이다. “아무것도 안 한 시장으로 남겠다”는 그가 이 일만은 예외로 하길 바란다.
최영훈 논설위원 tao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