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화해를 위한 종교인 신년 릴레이 인터뷰]<상>조계종 쌍계총림방장 고산 스님
평소 엄격하기로 소문난 고산 스님은 사진 촬영이 계속되자 “좀 고마해라. 얼굴 가죽 닳겠다”며 빙그레 웃었다. 평생 수행하면서도 손에서 호미를 놓은 적이 없는 스님은 “농사일을 가르치려고 해도 제대로 배우려는 놈이 없다”며 아쉬워했다. 하동=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스님들이 지켜야 하는 계를 내려주는 전계대화상(傳戒大和尙)이자 쌍계총림 방장인 고산 스님(81)의 말이다. 전계대화상은 오랜 수행 이력과 함께 선교(禪敎)에 두루 능한 원로들이 맡아왔다. 새해를 며칠 앞둔 지난해 12월 27일, 경남 하동 쌍계사 방장실에서 스님을 만났다. 지난해 9월 방장 추대 이후 첫 인터뷰다.
고산 스님은 “다시 한 해가 시작되는데 세상사가 갈등과 다툼으로 얼룩져 있어 힘겨워하는 이가 너무 많다”며 “진흙 속에서 꽃을 피우는 연꽃처럼 살아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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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최근 불거진 사회적 갈등과 소통 부재가 화두가 되자 인도의 앙굴마라 일화를 언급했다. 앙굴마라는 제자가 자신의 부인을 유혹했다고 생각한 스승의 간계에 빠져 사람을 죽인 뒤 그 손가락을 잘라내 머리 장식을 했다. 999명을 죽인 앙굴마라는 1000번째로 어머니를 죽이려다 부처를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사람들은 천하의 흉악범을 어떻게 제자로 받아들일 수 있냐고 반대했어요. 그때 부처님의 말은 한마디로 ‘과거를 묻지 마세요’죠. 자꾸 과거를 묻고, 그것 때문에 상종을 안 하려고 하면 안 돼요. 결국 앙굴마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참회하고 깨달음을 얻었어요.”
이어 스님은 “부처님은 또 지난 일을 묻는 대신 앞으로 잘할 일을 생각하라고 했는데 그걸 불교에서는 참회라고 한다”고 했다.
쌍계사 가는 길에 귀동냥을 하니 고산 스님의 별명은 ‘땡비’(땅벌)란다. 그 유래를 묻자 스님은 껄껄 웃으며 “땅에 집을 짓고 살다 무섭게 쏘아대는…. 조금이라도 생각이 비뚤어져 있으면 인정사정없이 귀싸대기 붙인다고 해서…. 내 성질이 좀 별나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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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 스님이 평소 좋아하는 구절이라며 직접 쓴 ‘처염상정(處染常淨)’.
“그때 일이 평생 분발의 계기가 됐어요. 사람이 사는 것은 해마다 비슷해요. 지나고 보면 똑같은 잘못을 저지를 때도 있어요. 80년을 살았지만 해마다 잘못했구나, 하면서 그걸 바로잡아 나가는 게 수행이라고 생각해요. 학생이나 직장인이나 정치인 다 마찬가지죠.”
스님은 부처의 가르침이나 대한민국 헌법이 다를 게 없다고 했다. “항상 자신은 잘하고, 남은 못한다는 식이면 싸움은 끝이 안 나요. 원칙을 세우되 때로 잘못한 것을 참회하면 용서하고,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죠. 소통 부재, 소통 부재 하는데, 어려운 얘기 필요 없이 역지사지하는 마음의 부족이죠.”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와 ‘지리산 무쇠소’로도 불리는 스님은 기자가 다리를 풀 무렵 불쑥 호박 키우는 재미를 아냐고 물었다. “한 구덩이에서 호박 한 줄기에 다섯 개씩, 다섯 줄기면 5 곱하기 5 해서 25개, 이걸 다시 열 차례 따 먹으면 한 해가 가요. 사람들이 이 재미를 잘 몰라요. 허허허.”
하동=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