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욱 정치부장
영화는 1980년대 초 부산에서 한 세무변호사가 ‘부림(부산 학림) 사건’의 변호를 맡으며 벌어지는 이야기가 배경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곳곳에 등장한다. 이런 판에 정치권 인사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특히 ‘노무현 후광’을 노리는 범야권 인사들의 호평은 줄을 잇고 있다.
당시 부림 사건 연루자들은 “전두환 정권 시절 벌어진 고문에 의한 용공조작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중에 이 사건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보수 인사들은 “용공조작한 사건이 아니다”라고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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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의 맏형 격인 민주당 문재인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며 “부림 사건이 발생한 1980년대와 비교해 지금의 절차적, 정치적 민주주의에 진전이 없다”고 지적했다.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해서 ‘일종의 공작’이라고 개탄했다.
문 의원의 메시지는 30년 전과 지금 상황이 거의 달라진 게 없다는 얘기다. 박근혜 정부가 반민주적 정권이라는 민주당의 정치 공세와 맥이 닿아 있다. 야권은 민주화 세력이니, 근본적으로 ‘민주 대 반(反)민주’ 프레임 전쟁이다. 그래서 ‘야권은 선(善)’이고 ‘박근혜 정부는 악(惡)’이라는 도식이 나온다.
친노 진영이 이제 와서 노무현 바람에 기댄다고 해서 나무랄 일은 아니다. 여권이 한때 박정희 마케팅을 했듯이 정치 세력이라면 정치 마케팅의 한 방편으로 활용할 수 있다. 노무현 바람은 친노 세력을 정치적으로 부활시킨 동인(動因)이었다. 2007년 대선 패배 직후 친노는 폐족(廢族)을 자처했다. 친노가 2010년 지방선거를 계기로 부활한 배경에 노무현 1주기가 상당한 역할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 바람 덕분에 친노는 민주당을 사실상 접수할 수 있었다.
친노가 부활하면서 노무현 정신은 실종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졌다. 친노 진영은 야권연대라는 눈앞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매달려 노무현 정부가 역점 추진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주 해군기지 등 핵심 정책을 뒤집는 데 앞장섰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철도노조 파업을 불법 파업이라고 비난했던 문재인 의원이 이번엔 그 파업을 옹호하는 장면은 정책 뒤집기의 ‘완결판’으로 비쳤다. 야권 주변에선 “도대체 누가 ‘원조 친노’이고 반노, 비노인지 헷갈린다”는 자조 섞인 얘기가 나올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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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흥행 돌풍은 친노에 분명히 또 하나의 기회이면서 위기가 될 수도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30년이면 세 번이나 바뀔 수 있는 시간일 것이다. 30년 전 억압적인 정치 지형을 지금 상황에 대입한다고 해서 친노의 지난 이력이 모두 정당화될 수 없다.
연민과 분노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친노는 영화 변호인을 넘어서야 산다. 이제 해가 바뀌었다.
정연욱 정치부장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