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녕 논설위원
이들보다 더 안타까운 건 민주당이다. 철도노조 파업에 대해 좌파 학자나 운동가, 노조가 뭐라고 하든 그들은 자기네 세계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민주당은 책임감을 갖고 현실 정치를 해야 하고, 두 번의 집권 경험까지 있는 공당(公黨)이니 뭔가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일방적으로 철도노조 편에 서서 그들을 옹호해 많은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 사실 이번 파업은 민주당이 지나치게 좌편향적이고, 운동권식 사고에 젖었으며,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다는 그동안의 부정적 이미지를 탈색하고 진정으로 국익과 민생을 걱정한다는 새로운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민주당이 집권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노조는 골칫거리였다. 친(親)노조 성향의 정부인지라 노조가 국정 운영을 도와줄 줄 알았는데 툭하면 불법 파업에다 연대 파업으로 정부를 길들이려 들었다. 오죽하면 김 전 대통령이 “500만 원, 1000만 원의 월급을 받는 고소득자들이 극한투쟁을 하는 것은 사회정의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다”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으면서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는 노조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질타했겠는가. 노 전 대통령은 “노조의 특혜를 없애야 한다”고 했다. 철도 운영의 민영화를 시도한 것도, 노조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가 부쩍 늘어난 것도 김대중 정부 때였다. 만약 민주당이 작년 대선에서 집권했다면 17조 원이 넘는 빚더미에 올라앉은 한국철도공사(코레일)를 어떻게 하려 했는지 묻고 싶다.
안 의원은 “여야 구도나 이념과 진영을 뛰어넘어 합리적 개혁을 지향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껏 새 정치가 뭔지, 합리적 개혁이 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 적이 없다. 만약 이번 파업 사태에서 안 의원이 정부의 준비 소홀과 소통 부족을 비판하더라도 철도노조의 불법 파업에는 분명하게 선을 긋고, 민영화 추진이 아니라는 걸 보장하는 선에서 경쟁체제 도입을 통한 코레일의 개혁 당위성을 강조했더라면 어땠을까. 긴 말 하지 않고도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가상의 안철수 신당에 대한 여론조사 지지율이 민주당의 2∼3배나 된다는 것은 민주당식 정치에 염증을 느낀 다수가 신당 지지로 돌아섰다고 볼 수 있다. 안 의원이 26일 광주를 찾아 민주당을 ‘기존의 낡은 체제’라고 규정한 것도 그런 자신감의 발로였을 것이다. 그러나 안 의원이 계속 모호한 수사(修辭)로 일관하면서 민주당과의 차별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못한다면 신당의 성공은 기약하기 어렵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