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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야스쿠니 전격 참배]아베의 한일정상회담 제안은 ‘쇼’였나

입력 | 2013-12-27 03:00:00

재뿌린 日… 관계개선 움직임 올스톱




외교부, 日대사대리 불러 강력항의 김규현 외교부 1차관(오른쪽)이 26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로 구라이 다카시 주한 일본대사관 대사대리(총괄공사)를 초치해 아베 신조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청와대 외교안보 라인에서는 내년도에 주요 과제 중 하나로 한중일 정상회의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올해 한국이 맡았던 한중일 3국 정상회의 의장국 역할도 12월로 종료되지만 다음 차례인 일본에 넘기지 않고 한국이 1년 더 맡는 방안을 심도 있게 추진했다. 올해 5월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한중일 정상회의는 일본의 계속되는 우경화 움직임으로 중국이 반대해 무산된 바 있다.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 일본과의 갈등상태를 언제까지 방치할 수 없고 북한 체제 불안정에 따른 공조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커졌다. 그러나 26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로 모든 구상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청와대는 이날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를 소집해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그 결과는 ‘청와대가 직접 나서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감정적으로 맞대응하기보다 국제사회에 일본의 역사인식에 대한 비판의식을 높이는 기회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 신뢰 중시하는 박 대통령의 ‘아베 불신’ 더 깊어질 듯


정부 고위 당국자는 “정치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애쓴 노력이 보람도 없이 허사로 돌아가게 됐다”고 말했다. 한미일 전통 동맹관계를 중시하는 외교안보 라인 일각에서는 어떻게든 올해 내에 한일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누구도 박근혜 대통령에게 제안을 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됐다.

박 대통령은 아베 총리가 정상회담을 제안할 때마다 “정상회담을 했는데 좋은 소식이 전해지지 않거나 정상회담 하자마자 독도, 위안부 문제가 나오거나 신사를 참배하거나 하면 (관계가) 더 악화될 수 있다”고 반대해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예측이 정확하게 맞은 것 아니냐. 한일 정상회담을 한 상황에서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 상황을 맞이했다면 우리 국민의 비난을 어떻게 감수했겠느냐”고 말했다.

청와대와 정부는 아베 총리의 정상회담 제안은 ‘쇼’였다는 것이 확실해졌다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일본이 자국의 정치적 목적으로 주변국과의 신뢰를 저버리고 신사를 참배한 데 더 분노하는 분위기다. 최근 불거진 남수단 파병 한빛부대의 탄환 대여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한국 정부의 공식 부인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현지 부대장과 방위성 본부와의 동영상 통화까지 공개하며 ‘한국 현지 부대장이 일본에 직접 탄환 대여를 요청했다’고 우겼다. 이를 통해 자신들의 ‘집단적 자위권’ 확보와 ‘무기수출 3대 원칙 개정’을 위해서는 이웃 국가와의 관계 악화쯤은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여줬다.

○ “아베의 악수(惡手)에 차분하고 실리적으로 대응하겠다”


아베 총리의 신사 참배 이후 대응에 대해 한 청와대 관계자는 “MB 정부 때 독도를 방문하는 식으로 감정적으로 대응해서는 오히려 일본의 잘못이 덮일 수 있다”며 “이번 일은 아베에게는 악수가 될 것이며 우리는 실리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마치 일본이 한국, 중국과 정상회담을 하자고 적극적으로 나서는데 한국이 대화조차 거부하고 있다는 식의 홍보를 많이 해 왔다. 특히 아시아 중시 정책을 펼치며 한국과 일본의 협력이 중요한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 지도층 사이에서는 한국이 일본과의 회담에 나서주기를 바라는 분위기가 많이 감지되어 왔다. 우리 정부는 그때마다 “우리 국민이 원하는 조치들은 하나도 취하지 않고 말로만 회담을 제안하고 있어 진정성이 없다”고 반박해 왔지만 일본의 홍보가 꽤 먹혀들어가는 상황이었다.

우리 정부는 아베 총리의 신사 참배로 미국뿐 아니라 국제사회에 “역시 일본의 역사인식이 문제의 본질”이라는 논리를 설파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보고 있다. 당장 미국이 “아베 총리의 참배에 실망했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한일 관계를 풀기 어려워졌다는 고민은 더욱 깊어지게 됐다. 지금 상황이라면 아베 총리 임기 내내 이런 경색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박 대통령의 동북아 평화협력구상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도 어느 정도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는 “일본에 대해 강경하되 차분한 대응이 필요하다”며 “정부 성명을 통해 ‘역사 직시’를 요구한 만큼 전략적 인내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정민 ditto@donga.com·조숭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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