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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박선희]가정식을 재발견하다

입력 | 2013-12-26 03:00:00


박선희 소비자경제부 기자

1990년대 대학가를 배경으로 한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드라마의 주요 무대인 ‘신촌 하숙’의 밥상이다. 도저히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수북하게 쌓인, 손 큰 하숙집 안주인의 상차림을 보면서 하숙생들은 매번 감탄과 놀라움에 입을 떡 벌린다. ‘서울시민’일지언정 ‘서울사람’은 되지 못한 상경 촌놈들이 의지하는 유일한 공간인 하숙집의 푸짐한 밥상은 넉넉한 인심 그 자체다. 낯설고 위압적인 환경에 주눅 든 마음을 달래주는 이해타산 없는 인정, 사람 사는 구수한 냄새가 다 그 밥상 위에 있다.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촌놈들이 매일 아침 머리를 맞대고 밥을 먹는 장면에서부터 가슴 찡한 그 시절 추억이 시작된다.

따뜻한 가정식 한 끼는 문학작품이나 영화에서 정서적 감응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로 즐겨 활용돼 왔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이들이 평범한 가정식과 일상을 공유하며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을 다룬 일본 영화 ‘가모메 식당’이 대표적이다. 집에서 쉽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음식, 하지만 엄마가 해준 것처럼 따뜻하고 정갈한 음식에서 삶에 지친 사람들은 위안과 위로를 얻는다. 이런 작품들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건 그만큼 많은 사람이 일상의 빈틈을 채워주는 따뜻한 밥 한술, 뜨끈뜨끈한 국 한 숟가락의 정을 그리워하며 살고 있단 뜻이기도 하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 풍요의 시대에 평범한 밥 한 끼를 보는 시선이 갈수록 각별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외식비가 국내 가계 식료품비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엔 20%에 불과했다. 경양식 집에서의 외식이 가족들의 특별 이벤트이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외식비 비중은 지난해 기준 47%로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도시화로 고향을 떠나며 집밥과 멀어진 이들이 늘었고, 맞벌이 가구와 1·2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끼니를 식당이나 배달음식으로 해결하는 게 일상이 됐다. 뜨끈한 집밥이 그리운 이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이다. 자연히 가족들끼리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음식과 삶을 공유하는 문화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역설적으로 사람들의 정서적 허기는 오히려 커진 셈이다.

그래서일까. 현란한 이국요리와 퓨전 음식점이 넘쳐나는 요즘의 식품·외식업계에서는 난데없이 가정식의 재발견이 한창이다. 외식 트렌드의 첨단을 다투는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과 상수동 카페거리에서 입소문을 내며 인기를 끄는 식당 중에는 소박한 가정식을 내세운 곳들이 드물지 않다.

식품업체들은 가정식 요리의 맛을 재현한 신제품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한상 푸짐하게 차려주는, 오피스 밀집가의 가정식 백반집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이 소박한 복고 바람의 본질은 요즘 대중문화에서 불고 있는 복고 열풍의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비단 ‘낭만의 그 시절’로부터만 멀어진 게 아니지 않나 싶다. 갈수록 살기 팍팍한 세상, 집밥을 잃고 고향, 가족과 분리된 시대. 헛헛한 속을 달랠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한 이들이 오늘도 식당 앞을 기웃거린다.

박선희 소비자경제부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