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환경 변화된 여성들 우울증 빠질 가능성 2.57배↑
대형마트에서 시간제근로자로 일하던 주부 윤모 씨(42)는 4월 정규직 전환을 통보받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8개월이 지난 지금 윤 씨는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을 호소한다. 이유는 뭘까.
정규사원이 됐지만 보수는 월 130만 원으로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근무 환경이 더 나빠졌다. 용역회사 소속의 비정규직일 때는 고객 불만을 처리하는 데스크에 주로 앉아서 근무했다. 정규사원이 되고서는 남성이 주로 하는 물품 이동작업에 동원됐다.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없는 점도 문제. 비정규직일 때는 유치원생 아들을 돌볼 사람이 없거나 몸이 아프면 용역 직원을 담당하는 팀장에게 말해 쉽게 조퇴나 휴가를 냈다. 정규직 사원이 되면서는 절차가 복잡해지고 상사의 눈치를 봐야 했다. 윤 씨는 “차라리 조금 덜 일하고 덜 벌더라도 비정규직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김승섭 고려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지난해 ‘근무환경 변화와 우울감’이란 논문을 통해 이 같은 현상을 분석했다. 이 논문은 스칸디나비아학회지 ‘노동환경 변화와 우울감’에 소개됐다. 논문에 따르면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여성이 우울증에 빠질 가능성은 정규직 여성보다 2.57배 높았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좀 더 나은 정규직 일자리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말했다. 의학적으로는 이런 현상을 적응장애로 설명할 수 있다. 이직 승진 등 근무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때 심리적 위축과 스트레스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적응장애는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을 없애면 2개월 이내에 사라질 수 있다. 다만 근무환경을 바꾸면서 생긴 적응장애는 원인을 곧바로 개선할 수 없는 때가 많다. 심하면 우울증, 불안장애, 공격적인 행동, 불면증, 식욕감퇴까지 이어진다. 최정석 보라매병원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일단 자신이 겪는 우울증의 원인을 알아야 한다. 초기에는 상담 치료를 받다가 증상이 심해지면 항우울제를 투여하는 등 적극적인 치료가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와 함께한 공동기획입니다. 취재에는 보건행정학과 4학년 강기준 씨, 영어영문학과 4학년 우한솔 씨가 참여했습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