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 생선회… 우익 햄버거… 음식엔 정치가 있다
우선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아사히신문이 내놓은 신간 중 인기 순위 3위였다. ‘제목만 그럴듯한 책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에 책을 집었다.
저자 하야미즈 겐로(速水健朗) 씨는 프리랜스 작가다. 미디어 도시 쇼핑몰 등에 대한 글을 썼다. 음식 전문가는 아닌 셈이다. 어떻게 글을 전개해 나갈지 궁금했다.
일본에서 살다 보면 라면가게 앞에 서 있는 긴 줄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야미즈 씨는 미국 뉴욕이라면 돈을 더 주면 빨리 먹을 수 있는 패스트트랙 비즈니스가 생길 것이고, 중국이라면 대신 줄을 서 주는 업자가 생길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일본은 절대 그렇지 않단다. 라면 앞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독특한 도덕관을 몸에 익혔기 때문이다.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총리는 “일본인은 재주가 있는 민족이지만 민주주의만은 약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일본인은 권력에 대체로 순종하고 조직도 상명하복에 익숙하다. 그런 순종적인 일본인이 정부에 반항하고 큰 목소리를 내는 게 있다. 바로 음식이다. 특히 쌀과 관련된 경우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추진 기사가 연일 신문 1면을 장식한 것도 ‘일본의 쌀을 지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음식으로 일본인이 하나 되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진단한다. 1980년대 내장탕 붐, 그 후 스낵 같은 닭튀김, 팬케이크같이 전 국민이 즐기는 음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졌다. 그 대신 현재는 두 부류의 음식으로 나눠져 있단다. 자연지향, 건강지향의 ‘슬로푸드’와 햄버거, 쇠고기덮밥으로 대표되는 ‘패스트푸드’다. 그런데 이 기준법에는 일본인의 음식 선호도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함께 녹아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소위 ‘승자’는 야채 중심의 저칼로리 식품을 선호한다. 소득이 낮은 ‘패자’는 건강에 관심을 갖기 힘들어 저가격, 고칼로리 음식을 섭취하는 경향이 강하다. 승자는 자기 고장 식재료를 소비하는 신토불이를 강조하지만 패자는 해외의 값싼 음식을 냉동해 들여오게 하는 글로벌리즘을 강조한다. 이런 상황 속에 ‘음식의 정치의식’이 생겨나게 됐다.
이 같은 틀 속에서 책은 음식에 녹아 있는 정치를 이야기한다. △정치와 떨어질 수 없는 음식 △정치의 계절에서 음식의 계절로 △고령자의 미래음식과 공산주의 부엌 등이 챕터 제목이다. ‘음식에 정치가 녹아들어 있다’는 주장에 공감한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