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오브 메이킹 머니/제이슨 커스텐 지음·양병찬 옮김/456쪽·1만4800원/페이퍼로드위폐범 아트 윌리엄스의 삶 추적
2000년경 아트 윌리엄스가 미국 조폐청 관람객 출입구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을 찍었을 당시 그는 자신이 만든 수천 달러의 위조지폐를 대형 쇼핑몰에서 사용하며 여자 친구와 국토를 가로지르는 여행을 하고 있었다. 페이퍼로드 제공
여성이 산 물건과 받은 거스름돈은 쇼핑몰 밖에서 기다리던 남성이 받았다. 둘은 가까운 구세군 자선함에 가서 포장도 뜯지 않은 물건을 가득 넣었다. 근처에 구세군이 없으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달라’는 메모를 붙여 교회 앞에 놓아뒀다. 아기 옷, 이유식, 학용품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필수품이었다.
이 커플이 쓴 100달러짜리 지폐는 예술품의 경지에 이른 위조지폐였다. 제조자는 커플 중 남자인 아트 윌리엄스(41). 그가 위조한 달러화는 미국이 1996년 3월부터 야심 차게 발행한 ‘뉴 노트’였다. 미국 조폐청 측이 역사상 유례없는 위조방지 기술을 갖췄다고 자부하던 화폐였다. 수천만 달러 상당의 장비가 필요한 ‘슈퍼노트’(위조지폐)와 달리 그가 만든 것은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전화번호부 용지와 풀, 페인트를 활용한 수공예품이었는데 그 정교함에 수사원들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이야기는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위조지폐범으로 체포되고 3년 만에 출옥한 아트를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아트는 맥주 4잔을 연거푸 비우고 말문을 여는데, 독자는 그의 이야기에서 눈을 떼기 어렵다.
어린 시절 그는 여동생을 성적으로 학대했던 무책임한 아버지와 양극성 장애를 앓아 가족을 돌볼 형편이 안 됐던 어머니 사이에서 컸다. 어린 아트는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해서 늘 친구 사이에선 스타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부모의 결별로 가정이 파탄나자 희망은 사라졌다. 그만큼 세상에 대한 복수심을 키웠다.
아트는 열일곱 살 때 위조지폐 기술자 다빈치를 만났다. 다빈치는 그에게 고급 인쇄 기술, 화폐 유통 개념, 수사망 피하는 법을 알려주고 홀연히 사라진다. 이후 아트의 행보는 완벽한 예술작품을 만들려는 장인과 닮아 있다. 저자는 ‘그는 위조지폐에 미쳐 있었다. 비용이 아무리 많이 들더라도 제대로 된 위조지폐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에게 지폐 위조는 예술이었고,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무대였다’고 썼다.
아트는 마음만 먹으면 수백만 달러의 돈을 찍어낼 수 있었다. 그는 돈의 노예가 된 다른 사람과 달리 돈 쓰는 여행을 하며 영원한 자유를 얻겠다는 오만에 사로잡혔다. 실상은 도피에 가까웠다. 위조지폐는 한 곳에 머물며 쓸 수 없었고 긴장과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오랜 기간 갈구했던 가족 간의 사랑과 추억은 애초에 돈으로 살 수 없었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저 위조지폐 한 장을 얻으려고 발버둥칠 뿐이었다. 그리고 함께 파멸했다.
책에 소개된 위조지폐의 역사도 흥미롭다. 저자는 지폐 위조의 원조로 기원전 3세기경 ‘주화에 불순물을 섞은 죄’로 추방된 이력이 있는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소개한다. 디오게네스는 “진정한 자유는 물질과 사회제도를 거부함으로써만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