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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와인만 찾네요”… 고급 와인의 굴욕

입력 | 2013-12-09 03:00:00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김모 사장은 요즘 창고 속에 쌓인 와인 때문에 고민이 많다. 예년 같으면 송년회가 많고 크리스마스 등이 끼어 있는 12월은 ‘와인 대목’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요리만 시키고 와인은 밖에서 들고 오는 손님들이 부쩍 늘었다. 대형마트 등에서 구입한 1만∼2만 원대 와인을 가져와 ‘코키지 차지’(외부 와인을 음식점에서 마실 때 내는 요금) 3만 원을 물어도 병당 6만∼20만 원인 레스토랑 와인보다 싸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마진이 높아 매출 효자였던 와인들이 이제는 고민거리가 됐다”며 “해외에서 와인을 더 싸게 들여오는 방법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들의 와인소비 트렌드가 빠른 속도로 ‘허세형’에서 ‘실속형’으로 바뀌고 있다.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 1만 원대 저가 와인 판매가 급증하는 데 비해 고급 레스토랑의 비싼 와인 판매는 크게 줄고 있다.

5일 롯데마트에 따르면 1∼10월 판매 상위 1∼10위 와인 중 9개는 이탈리아의 로카세리나, 칠레의 카르멘, 이탈리아의 두게세리 등 2만 원 미만의 저가 와인이었다. 10위 안에 포함된 2만 원 이상의 와인은 칠레산 ‘1865’(4만3000원)뿐이었다.

과거 전문점 등에서 구입하던 와인을 대형마트에서 사는 경향도 강해졌다. 한 와인수입업체 관계자는 “대형마트 등이 연중 와인 할인행사를 벌이다 보니 요즘 소비자들은 정상 가격이 붙은 와인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추세”라고 말했다.

병당 가격은 떨어졌지만 판매량이 늘면서 대형마트 등의 와인 매출은 높아지고 있다. 롯데마트의 올해 1∼10월 주류 매출 중 와인의 매출은 18.3%로 2004년(6.7%)의 3배 가까운 수준이다. 이 마트의 전체 주류 매출 중 와인의 비중은 2004년에 맥주, 소주, 양주, 전통주에 이어 5위였지만 2007년에 전통주를 제치고 4위에 올랐고 2008년에는 양주를 추월해 3위가 됐으며 2012년부터 소주를 제치고 2위를 지키고 있다.

주류 선물세트 중 와인의 비중도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롯데마트 선물세트 매출 중 와인의 비중은 2004년 11.1%에서 올해 70.7%로 뛰어올랐다. 양주 선물세트의 비중이 같은 기간 54.7%에서 12.1%로 주저앉은 것과 대조적이다. 와인 선물세트 역시 대중화의 흐름을 따르고 있다. 이영은 롯데마트 와인상품기획자는 “예전에는 와인 2병과 와인 따개, 와인 잔이 들어간 세트가 기본이었지만 요즘엔 와인 한 병만 넣은 실속형이 인기”라고 말했다.

와인 대중화로 저가 와인 소비가 늘면서 ‘제2의 와인 전성기’를 맞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10월 와인 수입량은 26만7400L로 지난해 같은 기간(22만6200L)보다 18.2%나 증가했다. 와인업계는 와인 소비가 많은 11, 12월 수입량까지 포함하면 올해 와인수입량이 ‘와인 붐’이 불었던 2007년(31만8100L) 수준까지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저가 와인이 확산되다 보니 고급 레스토랑이나 와인바들은 연말을 맞이해 자존심을 버리고 ‘반값 와인’을 내놓는 등 고객 잡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63빌딩의 레스토랑 ‘워킹온더클라우드’는 최근 고급 와인 30여 종을 최대 50%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기도 했다. 신성호 나라셀라 기획홍보실 이사는 “이미 와인은 애호가의 전유물이라는 관념이 깨질 정도로 와인이 대중화됐다”며 “저가 와인의 확산으로 전체 와인 시장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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