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입수 英외교문서 통해 드러나… ‘北 즉각 5대강령 맞불’ 비밀 풀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힌 1973년 6·23 특별선언을 발표하기 전 북한 측에 주요 내용을 통보한 사실이 2일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박 전 대통령 발표 직후 북한 김일성 주석이 ‘조국 통일 5대 강령’ 선언을 들고 나오며 맞대응할 수 있었던 역사의 비밀이 풀린 것이다.
미국의 냉전사 연구기관인 우드로윌슨센터가 최근 영국 문서보관소에서 입수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미국 측이 1979년 6월 남-북-미 3자회담 제의를 발표하기 전 북측에 미리 알려 주자고 제안하자 1973년 ‘상처받은 경험’을 들어 강력하게 반대했다. 박 전 대통령은 “1973년에 ‘합리적인 일련의 제안들’을 북측에 미리 알려 줬지만 그들(북측)은 명백하게 잘 준비된 선전 공세로 이를 끌어내리려고만 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이 1973년 6월 23일 오전 10시 7개항의 ‘평화통일 외교정책에 관한 대통령 특별성명’을 발표하자 김 주석은 이날 오후 기다렸다는 듯 체코 공산당 구스타프 후사크 총비서를 환영하는 평양 군중대회 연설에서 ‘조국 통일 5대 강령’을 발표했다.
제임스 퍼슨 우드로윌슨센터 북한국제문서프로젝트 책임자(역사학 박사)는 “박 정권이 1972년 10월 17일 유신 선포 사실도 사전에 알려 주는 등 중요 내정을 미리 알려 주면서까지 북측에 공을 들였지만 북측은 이미 박 대통령의 대화 공세가 독재정권 유지를 위한 것으로 판단했다는 점을 드러내는 사료”라고 해석했다.
이번에 발굴된 문서는 영국 외교부가 1979년 남-북-미 3자회담 개최를 둘러싼 주변국 동향을 탐문하기 위해 미 국무부 로버트 리치 한국과장과 전화 통화를 한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우드로윌슨센터와 한국 북한대학원대는 이 문서 등 새로 발굴된 1976∼79년 북한 외교문서를 놓고 3, 4일 워싱턴에서 비공개 한미 학술세미나를 연다.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