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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무대진행 - 연출 구멍 숭숭… ‘국민엄마’에 대한 결례

입력 | 2013-11-19 03:00:00

배우 김혜자 1인 연극 ‘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 ★★




연극 ‘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는 배우 김혜자의 고군분투를 100분간 보여준다. 그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감동적인 이야기다. 더 또렷하고 따스하게 전할 방법이 분명 있었다. CJ E&M 제공

7월 초 토요일 오후였다. 첫 뮤지컬 취재를 마치고 한동안 로비 구석에 서서 극장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내용은 안이했고 음악은 버성겼다. 하지만 관객 절반이 기립박수로 열광했다. 내 시각과 청각의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 걸까. 난간에 기대 사람들을 보며 한참 동안 생각했다.

한 달쯤 지나 나름의 답을 찾았다. 이야기나 노래의 완성도에 개의치 않는 관객이 예상 밖으로 많았다. 좋아하는 배우와 한 공간에서 숨쉬는 시간을 그저 기뻐하는 사람, 깔끔하게 차려입고 주말 오후를 공연 관람으로 소비하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사람…. 동참하기 어렵지만 존중해야 할 타인의 취향이었다.

15일 개막한 연극 ‘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에 대한 설명은 간단하다. 배우 김혜자(72)의 모노드라마. ‘다우트’ 앙코르 공연 이후 6년 만의 연극무대 복귀다. 1시간 40분 동안 피아노 연주자를 제외하면 오직 그 한 사람만 무대에 오른다. 백혈병에 걸린 열 살 소년 오스카와 소아병동 간호사 장미할머니의 우정을 그렸다. 김혜자는 의사, 소년의 어머니, 동갑내기 여자친구 등 11개 역할을 바꿔 맡으며 생애 마지막을 써내려간 소년의 편지를 객석에 전한다.

개막 날 밤 반응은 두 줄기로 뚜렷이 갈렸다. 공연이 시작하고 50분을 넘기자 십여 명이 암전을 틈타 차례로 자리를 떴다. 반면 막이 내린 후 기립박수를 보내는 관객도 줄잡아 서른 명은 됐다.

김혜자는 50년 전 K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몇 편의 드라마와 영화, 연극에 출연했는지 헤아리는 것은 부질없다. 연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토를 다는 것도 어리석다. 그는 ‘저이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라고 믿게 만들 만큼 범국민적 호의를 두른 배우 중 한 사람이다. 고희를 지난 ‘국민엄마’가 홀로 무대에 서서 긴 이야기를 얽어내는 모습을 무조건 즐겁게 응원하며 지켜보는 관객이 적잖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진주처럼 조용히 빛나던 영화 ‘마더’(2009년)와 달리 무대 위 김혜자는 내내 외롭고 힘겨워 보였다. 세심하지 못한 진행이 연기의 맥을 거듭 끊었다. 배우의 풍성한 매력에 비해 대본과 연출의 밀도는 차마 가만히 앉아 바라보기 송구할 만큼 앙상했다. 테이프로 얼굴에 붙인 마이크가 떨어졌을 때 김혜자가 보여준 의연한 대처가 상대적으로 도드라질 수밖에 없었다.

김혜자는 다음 달 29일까지 무대를 홀로 지킨다. 4년 전 ‘마더’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은 “촬영 현장에서 시원하게 오케이를 불렀는데 김혜자 선생님이 ‘마음에 안 들면서 어쩔 수 없이 넘어간 걸 거다’라며 분장 차에 들어가 울음을 터뜨리셔서 아주 혼난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저 배우는 당연히 최상의 연기를 보여줄 것’이라는 관객의 믿음이 배우에게 얼마나 엄청난 부담인지 봉 감독은 잘 알았다. 그리고 악전고투 끝에 “배우 김혜자의 새로운 모습을 찍는 것을 영화의 목표로 삼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그저 김혜자와의 만남에 기꺼워하는 관객의 취향만 소화하는 것은 소중한 우리 시대 ‘어머니 배우’에 대한 큰 결례다. 대사가 조금만 적었다면, 그리고 무대가 조금만 단출했다면. 아쉬움이 울적하게 곱씹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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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크에마뉘엘 슈미트의 소설을 극화. 함영준 연출. 서울 영등포동 타임스퀘어 CGV신한카드아트홀. 4만∼6만 원. 1588-0688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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