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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보다 한국 더 많이 가르쳐요”

입력 | 2013-10-28 03:00:00

모스크바 ‘1086 한민족학교’의 열정




엄 넬리 ‘1086 한민족학교’ 교장(오른쪽)과 학생들이 24일(현지 시간) 한국어수업 시간 도중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학교는 러시아에 있는 한민족학교 중 유일하게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정규 교육기관이다. 모스크바=김철중 기자 tnf@donga.com

24일(현지 시간) 오전 러시아 모스크바 시내에 있는 ‘1086 한민족학교’. 쉬는 시간을 알리는 음악은 ‘아리랑’이었다. 학생들은 교실을 뛰쳐나와 간식이 준비돼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바쁜 발걸음에도 선생님을 마주칠 때면 하나같이 한국말로 “안녕하십니까”라고 큰 소리로 인사했다.

한러 수교(1990년) 2년 뒤인 1992년에 세워진 이 학교는 한민족학교 중 러시아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유일한 정규 교육기관이다. 러시아에서는 지역별로 학교에 번호를 매기는데 한민족학교는 ‘1086번 학교’인 셈이다. 초중고교 통합과정(1∼11학년)으로 현재 약 700명이 재학 중이다. 고려인(러시아와 주변국에 거주해온 한국인 교포)이 65% 정도이며 나머지는 알바니아인 등 53개 러시아 내 소수민족 출신이다. 엄 넬리 교장은 “한때 89개에 달했던 소수민족 학교가 러시아 내 민족차별 문제가 심화하고 재정난 등을 겪으면서 최근 5개까지 줄었지만 이곳은 21년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 곳곳에서 한국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과 애정이 묻어났다. 학교 현관에는 한복을 비롯해 한국 전통 물품들이, 복도에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자료들이 진열돼 있었다. 복도 벽면에는 한 학생이 그린 박근혜 대통령의 초상화도 걸려 있었다. 이곳에서는 학년에 따라 일주일에 4∼6시간씩 한국어를 배운다. 한국어 수업시간에는 단어와 어법을 배우는 것 이외에 애국가 한국동요 등도 함께 따라 부른다. 최근에는 한국 대중문화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자 한국어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더 높아졌다. 한국어 수업을 담당하는 이미화 교사는 “아이들이 케이팝(K-pop) 가사를 가져와 그 뜻을 해석해 달라는 통에 쉬는 시간까지 한국어 수업이 이어질 정도”라며 “오늘 숙제도 최신 한국드라마를 보고 10문장 이상 받아써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의 명성이 유지되는 데에는 고려인인 엄 넬리 교장의 열정이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엄 교장은 일반 러시아학교장을 맡고 있던 중 차별받는 고려인 학생들의 어려움을 접하고 직접 한민족학교를 세웠다. 한국에서 가져온 교재가 어린 학생들에게 너무 어려워 학년별 교재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70세가 넘은 지금도 전교생의 이름을 외우고 매일 아침 현관에서 등교하는 모든 학생들을 맞이한다.

엄 교장은 “예전에는 고려인들조차 한국어를 배우려 하지 않아 가슴 아픈 적이 많았다”며 “이제는 한국의 위상이 높아져 러시아인 학부모들도 자녀의 장래를 위해 한민족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걸 보면 가슴이 벅차 오른다”고 말했다.

모스크바=김철중 기자 tn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