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58세 ‘들국화’ 원년 멤버 주찬권
들국화의 드러머 주찬권 씨를 지난해 4월 그가 운영하는 경기 성남시 정자동의 라이브 클럽 ‘버디 라이브’에서 만났다. 작은 지하 공간이었지만 그는 스타디움 무대에라도선 듯 폭풍 같은 연주를 토해 냈다. 성남=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그는 웃음으로 말을 대신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주찬권 6집의 제작 투자와 홍보, 마케팅을 맡았던 미러볼뮤직의 이창희 대표는 “그 정도 전설적인 음악인이 시쳇말로 ‘가오’ 잡지 않고, 내가 좀 어려우니 이런저런 투자를 해주면 안 되겠느냐고 조심스레 부탁해 와 놀랐다”고 했다.
고인은 1980년대 말 들국화 해체 후 음악인으로서 가장 어둡고 낮은 곳을 체험했다. “스탠드바에서 오르간, 카바레에서 베이스, 유흥업소에서 키보드도 쳐 봤죠.” 그는 18년 전 이혼 후 두 딸을 혼자 키우며 겪은 일을 기자에게 털어놓았다. 들국화 팬이었던 업소의 취객이 그를 알아보고 “형님, 여기서 뭐하시는 거예요?” 하며 울더라는 얘기를 전하면서 “들국화가 오히려 내게 아픈 이름이었던 적도 많아”라며 소탈하게 웃었다. “어떤 땐 좋은 걸(들국화 활동) 누린 시간 때문에 안 좋은 걸 겪게 되는 경우도 있거든. 좋은 게 나쁜 건지, 나쁜 게 좋은 건지 헷갈려서 묘하더라고요.”
고인은 다음 달 나올 예정이던 들국화 4집을 위해 20여 곡의 드럼 녹음을 끝내 놨다고 한다. 들국화 2집에 실렸던 ‘또다시 크리스마스’의 리메이크 버전을 위한 메인 보컬도 녹음해 뒀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포털 사이트의 연예 뉴스난에서 매일 불꽃놀이를 터뜨리는 가요계에서 그는 어쩌면 들국화보다 작은 꽃이었는지 모른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22일 오전 11시 20분. 고인의 유해는 화장돼 경기 광주시 스카이캐슬 추모공원에 안치된다. 6집 제목은 ‘지금 여기’였다. 그는 지금 여기 없다.
‘어느새 계절은 바뀌고/아직도 내 마음 불타고 있는데…/벌써 어느새 낙엽은 떨어져/하지만 아직도 내겐…/아직도/내겐’(주찬권 ‘아직도 내겐’ 중·2012년)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