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고성능 오디오 전시회 ‘하이엔드 2013’에서 관람객들이 아이리버 전시관을 찾아 ‘아스텔앤컨’ 제품을 체험해보고 있다. 왼쪽은 당시 전시회에서 처음 공개한 아스텔앤컨 신제품 ‘AK120’. 아이리버 제공
2011년 8월 27명의 엔지니어가 회의실에 모였다. 1999년 창업 당시부터 함께했던 원년 멤버들이다. 아이리버의 미래를 고민하던 이들은 “끝을 내더라도 우리가 원래 하고 싶었던 것을 해보고 끝내자”며 마지막 사업계획서를 썼다. 이들이 구상한 신제품은 ‘궁극의 음악 플레이어’, 뇌출혈로 쓰러져 투병 중인 양덕준 창업주의 평생 꿈이었다.
이상원 국내영업부 상무는 “2006년 당시 양 사장님 주도로 궁극의 음향기기를 만드는 프로젝트에 도전했지만 기술적 한계로 실패했다”며 “제일 자신 있는 음향기기 사업으로 돌아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자고 직원들이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아이리버 사람들은 ‘이번에 망하면 아이리버는 문을 닫는다’는 생각으로 1년간의 ‘눈물’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음향기기를 만들자는 의미로 프로젝트 이름도 ‘티어 드롭(Tear Drop·눈물)’으로 지었다. 프로젝트 명에는 회사를 살려보겠다는 원년 멤버들의 눈물도 녹아 있다.
연구실 바닥에 박스를 깔고 자며 연구하길 1년, 그 사이 회사는 몇 번 구조조정을 했다. 회사를 떠나야만 했던 동료들을 다시 불러오기 위해서도, 더 이상 사람을 내보내지 않기 위해서도 서둘러 ‘작품’을 내놔야 했다. 그렇게 1년 만에 탄생한 제품이 ‘아스텔앤컨’, 세계에서 가장 작은 크기의 포터블 MQS(마스터링 퀄리티 서비스) 플레이어였다.
MQS 파일은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음원 파일 원본을 그대로 응축한 형태로, MP3 파일과 달리 음원 손실이 거의 없다. 아날로그 사운드를 디지털로 기록할 땐 음을 잘게 쪼갤수록 원음에 가깝게 구현되는데 MQS 파일은 CD보다 500∼1000배 더 잘게 잘라 기록한 음원이다. 전문가들은 MQS 파일이 CD에 비해 3, 4배 음질이 뛰어나다고 평가한다.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시장이다 보니 회사 내에서도 ‘아스텔앤컨이 과연 팔리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도 있었다. 정석원 마케팅실 상무는 “한 달에 300대만 팔아도 흑자라고 서로를 다독이며 제품을 만들었다. 그런데 첫달에 1000대 주문이 들어왔다. 딱 1주년이 된 지금은 한 달에 4000∼5000대씩 팔린다. 우리도 놀랄 정도로 ‘대박’이 났다”고 했다.
정 상무는 “아직까지 아이리버를 기억하는 외국 소비자가 많더라”며 “그들이 좋아하는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브랜드를 유지하려고 전량을 국내에서 생산한다”고 했다.
국내에서도 MQS 시장이 조금씩 형성되고 있다. 아이리버는 MP3 플레이어처럼 편리하게 MQS 파일을 내려받을 수 있도록 전용 음원 사이트인 ‘그루버스’도 만들었다. 국내 스튜디오 및 해외 유명 음반사와 연이어 제휴를 맺은 결과 1년 사이 2만 곡을 확보했다. 현재 회원 수는 3만∼4만 명 수준이다. 최근 삼성전자와 LG전자 등도 스마트폰에 고해상도 원음 재생 기능을 탑재해 시장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요즘 아이리버 사람들은 10년 전 애플과 경쟁하던 시절을 되새기며 제2라운드를 준비하고 있다. 소니가 12월 MQS 포터블 플레이어를 출시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 상무는 “‘공룡’들과의 싸움에서 더 이상 지지 않으려고 많은 준비를 했다. 2003년부터 애플과 겨룬 1라운드에선 결국 졌지만 소니와의 두 번째 라운드에선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