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희 소비자경제부 기자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해방을 진정한 자유와 동일시하는 건, 생업에 얽매여 있어야 할 때 시간에 대한 통제권을 조직이나 고용주 등 다른 누군가가 갖기 때문이다. 지정된 시간에 전투하듯 출근해야 하고, 바가지요금을 감수하며 최성수기에 휴가를 떠나야 한다. 어린이집에 맡겨놓은 아이를 찾아올 사람이 없어도 퇴근 전엔 자리를 뜰 수 없다. 해결 방법은 없을까. 물론 돈의 제약이 없다면 이런 고충을 좀 더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결코 돈이 아니다.
미국 작가 티머시 페리스의 ‘4시간’이란 흥미로운 책에 따르면, 백만장자처럼 살기 위해 필요한 건 백만금이 아니라 시간 관리의 자율권이다. 개인이 시간활용에 재량권을 가지는 것만으로 거금을 투자한 것과 맞먹는 경제적 효과를 ‘거저’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일례로 성수기만 피해 휴가를 가도 두세 배 이상의 비용절감 효과를 볼 수 있다. 출퇴근길 러시아워의 고통만 없어도 근로생산성은 현격히 높아진다. 삶의 질 개선은 돈으로 따지기 어려운 가치가 있다. 육아, 여행, 자기계발에 맘껏 투자하면서도 집중할 수 있는 시간에만 일해 경력을 쌓을 수도 있다. 근로방식에 대한 발상만 바꾸면 가능한 일이다.
최근엔 국내의 경직된 근로문화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육아여성을 배려한 시간제 일자리 등 ‘퍼플잡’(신축근무제 일자리)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근로 문화가 공공선의 증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가는, 반길 만한 변화가 아닐까 싶다. 사람들이 백만장자에게서 ‘진정’ 부러워하는 게 뭐겠는가. 평일 오후에 운동하면서도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는 자유다.
박선희 소비자경제부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