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흥모 독일 베를린자유대 정치학 박사 아주대 강사
우리의 남다른 관심은 독일 정당들의 성적표가 아닌 ‘정치인 메르켈’에게 있다. 이번 선거는 기민당의 승리가 아니라 ‘안지’(메르켈 총리의 애칭)의 승리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나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면 메르켈의 무엇이 2017년까지 12년 최장수 여성 총리를 가능하게 했을까. 사실 정치 지도자가 오랜 시간 시민의 사랑과 선택을 받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선적으로 생각해 볼 것은 그녀의 리더십이다.
메르켈은 이념보다 점진주의적(step by step) 시행착오의 방법으로 정치적 목적을 관철해 나가는 유연한 정치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역으로 이 같은 정치적 기질 때문에 당내에선 당의 정체성을 해친다거나 당 밖에선 집권에 대한 욕심밖에 없어 보인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둘째로 정치 스타일을 들 수 있다. 일부 비판자는 메르켈을 ‘정책의 도용자’ 또는 메르켈벨리안주의(merkelvellianism·메르켈+마키아벨리즘)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기민당이라는 당 정체성을 벗어나 좌편향, 즉 사민당과 녹색당의 어디쯤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당 내의 볼멘소리다. 메르켈을 독일의 마피아적 대모(godmother)라고 힐난하는 이들도 있다. 이에 대해 메르켈은 “기민당은 정책을 줄곧 바꿔왔다. 그러나 지지자는 이에 대해 성내지 않는다”고 오히려 대꾸한다.
한편 일각에서는 정치 지도자 하면 연상되는 카리스마를 메르켈은 갖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메르켈은 카리스마를 ‘새로운 형태’로 그려나가고 있는 것 같다. 때로는 자신이 저평가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화내지 않고 묵인한다. 또 적당한 때가 올 때까지 충분히 인내할 줄 안다. 이 점이야말로 메르켈만의 카리스마가 빛을 발하는 지점이다.
마지막으로 메르켈의 정치적 성공은 대중성에서 찾을 수 있다.
인물이 제도나 이념에 우선하는 것이 꼭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번 선거에서 독일인들의 선택은 달랐다.
조용한 카리스마에 정치적 실용주의자라 하더라도 국가와 시민에게 안녕과 편안함과 신뢰를 심어 주는 것이, 무늬만 카리스마에 튀는 이념형 정치가보다 낫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흥모 독일 베를린자유대 정치학 박사 아주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