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의 문을 연 지 5년. 발전은 눈부셨지만 부작용도 컸다. 느슨한 사회분위기 속에 온갖 사건사고가 잇따랐다. 폭탄테러, 여객기 납치, 연쇄살인 등 중국을 발칵 뒤집은 사건이 한두 번 발생한 게 아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덩샤오핑이 꺼내든 옌다는 탈도 많았지만 이 덕분에 중국 사회는 제정신을 차리고 경제는 비약적인 도약을 이어간다.
30년 뒤인 올해 초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파리부터 호랑이까지 때려잡겠다”고 공언했다. “부패척결에 당과 국가의 존망이 걸렸다”는 위기위식 속에서 나왔다. 호랑이는 부패의 몸통, 파리는 깃털을 말한다. 이후 사정의 칼바람이 불었다. 관영언론은 시 주석 집권 이래 차관급(부부장급) 이상의 ‘호랑이’ 9명을 처벌하는 등 사상 최고 강도의 부패척결이 진행 중이라고 선전했다.
덩샤오핑의 옌다는 성역이 없었다. 그해 10월 인민해방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주더(朱德)의 손자 주궈화(朱國華)가 톈진(天津)에서 처형당했다. 마오쩌둥(毛澤東) 저우언라이(周恩來)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공화국 10대 원수 중 첫 번째로 꼽히는 명장의 핏줄도 옌다를 피하지 못한 것이다. 성폭행과 절도행각을 일삼았다는 이유다. 덩샤오핑의 결심 없이는 불가능했던 이 일을 두고 사람들은 “원숭이 앞에서 닭 목을 쳤다(殺鷄給후子看)”고 말한다. 훗날 덩샤오핑도 쓴 표현이다.
시 주석도 성역 없는 부패 척결을 외쳐왔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국영기업의 대표 격인 ‘중국석유’에 대한 대대적 조사는 주목된다. 중국석유는 석유방(석유와 관련한 정부와 산업계 인맥)의 요람이자 무엇보다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법위원회 서기의 텃밭이다. 석유방은 중국 양대 권력파벌 중 하나인 상하이방(상하이 출신 관료그룹)의 돈줄로 알려져 왔다.
로이터통신이 올해 3월 개설한 중국의 정치인맥 지도 ‘커넥티드차이나’에 따르면 저우 전 서기의 핵심 인맥은 8명이다. 이 가운데 5명이 체포됐고 1명은 체포설이 나돈다. 저우 전 서기의 비서 등을 지냈던 부부장급 이상 고위직과 보 전 충칭 시 서기다.
남은 2명이 바로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과 쩡칭훙(曾慶紅) 전 상무위원이다. 장 전 주석의 막강한 영향력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쩡 전 상무위원은 오늘의 시 주석을 있게 한 거물이다. 게다가 저우 전 서기는 최근 5년 동안 공안 무장경찰 검찰 법원을 총괄했고 상무위원으로 시 주석과 함께 중국 최고의 의사결정을 해왔다. 정치적 동란을 제외하고 전현직 상무위원이 처벌된 전례는 없다. 저우 전 서기 조사설의 진위를 두고 엇갈린 시그널이 이어지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시 주석의 부패 척결이 진정한 시험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