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결혼도 많이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혼인율은 5.0, 인구 1000명당 한 해 5쌍이 결혼한다. 이에 비해 우리는 7.3, 7쌍 이상이 탄생한다.
혼외출산율의 차이는 더욱 극명하다. OECD 회원국의 평균 혼외출산율은 40% 안팎, 신생아 10명 중 4명이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에게서 태어난다. 이에 비해 우리는 2.0%,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 2.0%를 두고도 ‘망조가 들었다’고 개탄한다. 전통적 가족 관념이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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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이렇게 되면 그동안 가족이 담당해 오던 기능은 누가 수행하게 될까. 일부는 시장이 그 기능을 담당할 것이다. 아이를 기르고 병을 보살피고 하는 일들은 이미 상업화 내지는 준상업화되어 있다. 어려울 때 십시일반 도움을 주고받던 일도 많은 부분 보험회사가 떠맡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역시 국가와 시민사회다. 경제적 능력을 가리는 시장과 달리 오로지 필요에 따라, 정말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 점에서 우리의 고민은 깊어진다. 이 두 부문 모두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국가는 재정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서구 복지국가들의 경우 가족 관념 자체가 우리만큼 강하지 않았다. 자연히 오래전부터 국가가 많은 역할을 해 왔다. 그리고 기꺼이 그에 필요한 세금을 냈다. 때때로 불어 온 사회주의 바람도 이러한 국가 기능의 확대와 조세구조의 확립을 도왔다.
그러나 우리는 아니다. 가족이 많은 일을 하기에 국가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낮았다. 조세구조나 재정구조 또한 그에 맞춰졌다. 그 결과 국민부담률, 즉 세금이나 건강보험, 사회보장기여금 등 국민이 내는 공적 부담 비율이 국민총생산 대비 25%, OECD 국가 평균인 34%의 7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것으로 무엇을 얼마나 더 잘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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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또한 마찬가지다. 구조나 기반이 대단히 미약하다. 오랜 권위주의 체제 때문에 스스로 우리 사회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못해 봤다. 늘 지배의 대상이자 규제와 감독의 대상이었다. 내가 주인이 아닌데 무엇 때문에 내 시간과 돈을 내어 놓겠는가. 가족이 빠져나간 자리를 메우겠다고 나설 이유가 없다.
지금이라도 주인이 되는 길을 크게 열어 주면 좋으련만, 분권과 자치 등 이를 위해 필요한 노력들이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시작된 지방자치도 혼탁한 중앙정치와 지역사회의 불합리한 정치경제 구조에 갇혀 있거나 오염되어 있다.
이렇게 가족이 약화되고 국가와 시민사회가 그 자리를 제대로 채우지 못하는 사이,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OECD 국가 최고의 노인 자살률, 역시 OECD 국가 최고 수준의 노인 빈곤율, 그리고 실제 10만 명은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출 청소년 등 숱한 문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한가위 달을 즐거운 마음으로만 보지 못할 이유다.
모처럼 가족들이 모여 앉는 자리,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와 함께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가 가족이 주는 이 따스함을 계속 유지하고, 나눌 수 있는지를 이야기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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