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추징금 완납계획 발표]■ 백담사行에서 대국민 사과까지
12·12쿠데타 당시 전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하극상을 당했던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은 1993년 7월 전 전 대통령 등을 내란혐의로 고소·고발했다. 그러나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이듬해 10월 ‘공소권 없음’이라고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심판대에 제대로 오르지도 못한 첫 번째 심판이었다.
1995년 10월 노태우 전 대통령이 수천억 원대 비자금을 갖고 있다고 당시 박계동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폭로하면서 두 번째 심판이 다가왔다. 이를 계기로 김영삼 대통령이 ‘역사 바로 세우기’를 내세우며 5·18특별법 제정을 공식화했고 검찰은 다시 전 전 대통령을 향해 수사의 칼날을 겨눴다.
그해 12월 22일 그는 사면됐다. 하지만 그가 재임 기간 거둔 정치자금 중 사적(私的) 용도로 챙겨 뒀다고 법원이 판단한 2205억 원의 추징이 문제였다. 1997년 법원이 추징금을 확정하면서 확보한 전 전 대통령의 재산은 약 239억 원. 이후 16년 동안 추가로 추징한 돈도 290억 원 남짓에 불과했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민주당은 추징시효를 연장하고 불법 재산과 거기서 유래한 재산을 별도 절차 없이 가족 등에게서 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개정안’, 일명 ‘전두환 추징법’을 5월 발의했다.
6월 초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 씨가 조세회피처인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소유하고 있다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폭로가 나오면서 ‘전두환 추징법’ 처리에 불이 붙었다. 전 전 대통령은 대통령 단임 약속을 지켰고 헌정 사상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뤘다는 점 등을 공적으로 내세워 왔다. 하지만 국민은 그가 권력을 쥐는 과정에서의 군사쿠데타 및 5·18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 5공 기간 자유와 언론을 탄압한 기억을 잊지 않았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 중 계엄군의 총격 등으로 민간인 165명(정부 공식 통계)이 사망했지만 누가 최초 발포 명령을 했는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1995년 검찰의 수사 결과엔 1980년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발포명령 하달 과정에 연루된 정황이 두루뭉술하게 나타나 있을 뿐이다. 5공의 업보를 심판하고 역사적 과오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와 시대적 요구가 퇴임 후 25년이 지나 불법취득 재산에 대한 추징금 납부 선언을 이끌어냈다. 나머지 부분의 5공 청산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민동용·신광영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