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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멎는 대작 앞에 서면 장엄한 ‘슬라브 교향곡’이 들리는 듯

입력 | 2013-08-06 03:00:00

[무하의 숨결이 살아있는 도시, 프라하]<하>체코 프라하국립미술관 ‘슬라브 서사시’전과 무하미술관




체코의 프라하 국립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알폰스 무하의 ‘슬라브 서사시’는 슬라브의 신화와 역사를 20점의 거대한 캔버스에 담은 연작이다. 쉰 살에 체코로 돌아간 무하는 마지막 생을 바쳐 연작을 완성한 뒤 조국에 헌정했다. 프라하=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체코 프라하국립미술관 1층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입이 딱 벌어지고 가슴은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높이 10m의 천장 아래 웅장하면서도 몽환적인 초대형 유화 20점이 도열해 있다. 알폰스 무하가 조국과 동포들에게 바친 마지막 역작으로 슬라브 민족의 신화와 역사를 표현한 ‘슬라브 서사시’ 연작이다.

이 미술관에서 연말까지 열리는 ‘슬라브 서사시’ 특별전은 관객의 눈이 아닌 마음을 파고드는 울림을 가진 전시다. 약소국가 출신 화가로서 슬라브 민족의 통합과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그려 낸 8×6m 규모의 대작이 어울려 장엄한 시각적 교향악을 펼쳐 낸다. 체코 독립 10주년 기념으로 1928년 프라하에서 처음 선보인 뒤 나치와 공산체제 아래 창고에 갇히는 신세가 됐던 이 대작이 84년 만인 지난해 5월 프라하로 귀환한 것은 세계적인 화제였다.

무하는 연극 포스터로 명성을 얻은 이래 장식미술과 상업광고, 공예 디자인 등 실용 미술 분야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면서도 화가로서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파리에서 눈부신 성공을 거두고 쉰 살에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1912년부터 1926년까지 이 연작에 몰두하며 자신의 집념을 알찬 수확으로 길어올렸다.

○ 슬라브의 영혼과 역사 담은 ‘서사시’전

거대한 파노라마처럼 고대로부터 중세, 얀 후스의 종교개혁, 1차 세계대전까지 사실과 환상을 결합해 체코를 비롯한 범슬라브 민족의 발자취를 20개 에피소드로 압축해 들려주는 ‘슬라브 서사시’. 무하 특유의 색채감과 조형언어는 거대한 캔버스를 빈틈없이 채운 치밀한 화면 구성과 어우러지며 슬라브의 혼을 그려 냈다. 고루한 기록화가 아닌, 휴머니즘에 기반을 둔 역사의식의 표출로 짙은 감동을 전하는 작품 앞에서 발길을 뗄 수 없었다.

원래 무하는 이 연작을 위한 특별전시관을 짓는다는 조건 아래 프라하 시에 그림들을 기증했지만 시대적 상황이 악화되고 약속 이행이 미뤄지는 바람에 감상의 기회 자체가 봉쇄됐다. 이번에 다시 돌아온 ‘슬라브 서사시’ 연작은 그간의 아픔을 떨쳐 내고 말하는 것 같다. 무하를 아름다운 꽃과 여인의 화가로만 이해한다면 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마침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알폰스 무하, 아르누보와 유토피아’전에선 이 연작의 전시 포스터를 비롯해 스케치와 습작, 모델들의 사진을 선보여 길고 험난했던 작업 과정의 속내를 엿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종교 인종 문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삶을 누릴 인류의 권리를 그림으로 표현한 슬라브 서사시. 슬라브를 넘어 세계의 평화를 염원했던 위대한 화가의 철학이 스며 있다.

○ 무하의 모든 것 느끼는 무하 미술관

프라하 도심에 있는 무하미술관은 무하의 삶과 예술을 총체적으로 소개하는 공간이다. 프라하=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와, 정말 예쁘다!” ‘프라하의 봄’으로 불리는 1968년 자유화운동의 성지인 바츨라프 광장과 가까운 곳에 있는 무하 미술관. 이곳 전시장에서도, 기념품 가게에서도 한국 관광객들의 속삭임을 쉽게 들을 수 있다.

무하 재단이 1998년 설립한 무하 미술관은 그의 환상적 예술세계와 다방면에 걸친 재능을 소개하는 공간. 내부는 낡고 소박하지만 그 안에 담긴 작품은 숱한 볼거리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술관 측은 “지금까지 유럽은 물론이고 일본 한국 등 세계 각지에서 50만 명의 관객이 찾아온 무하 마니아들의 순례지”라고 자랑했다.

1층 전시장은 그에게 명성을 안겨 준 ‘지스몽다’ 등 파리 시절 포스터로부터 시작된다. 이 밖에 장신구 등 도안 밑그림, 체코어 포스터, 유화, 드로잉과 파스텔화, 사진과 그의 손때 묻은 물건들을 두루 살펴 볼 수 있다.

미술관을 둘러보면 대량 생산이 가능한 포스터를 제작한 무하의 소신이 피부에 와 닿는다. “누군가의 응접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행복했다. 그것은 저렴하고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으며 유복한 계층뿐 아니라 가난한 가정집에서도 누릴 수 있는 그런 것이다.”

프라하=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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