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 여행전문기자
이건 보비 존스(1902∼1971·미국)가 세계 최초이자 지금까지도 유일한 ‘캘린더 그랜드슬램’을 달성(1930년)하기까지의 성장스토리다. ‘캘린더 그랜드슬램’이란 한 시즌에 미국과 영국의 프로와 아마추어 메이저대회(총 4개)를 모두 석권하는 것이다. 그는 스물여덟, 그것도 전업프로가 아니라 본업(변호사)에 충실한 아마추어로서 이 대업을 이룬다. 그리고 곧바로 은퇴해 생업에 열중하며 골프장을 짓고 대회도 창설한다. 미국 명문 오거스타 컨트리클럽(조지아 주)과 거기서 매년 열리는 마스터스대회가 그것이다.
나의 뒤늦은 골프 입문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이는 보비 존스다. 좀 더 분명히 하자면 끝까지 아마추어로 남은 보비 존스의 뚝심에 담긴 골프에 대한 사랑과 철학이 요체다. 이건 영화 속 한 장면이다. 미국의 프로골퍼가 모두 그 앞에 무릎을 꿇자 프로들의 심기가 좋을 리 없다. 그러던 중 US오픈 챔피언십이 열린 클럽하우스에서 한 프로가 “너도 돈이나 벌지”라고 힐난한다. 그때 보비 존스의 골프철학이 드러난다. “아마추어가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라틴어로 ‘사랑’입니다. 내가 프로 전향을 않는 건 골프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에겐 골프가 돈이지 않습니까.”
1925년 US오픈의 11번홀. 수풀에서 두 번째 샷을 날린 그는 즉시 경기진행요원을 불러 1벌타를 자청했다. 어드레스 중 볼이 움직였다는 게 이유였다. 진행요원은 본 이가 없으니 스스로의 판단에 맡긴다고 했다. 그러자 주저 없이 스코어북에 한 타를 더했다. 그 한 타로 우승을 내준다.
그 일로 언론에선 칭찬이 자자했다. 하지만 그는 우쭐해하지 않았다. 그런 진정성은 그가 한 이 말에서 잘 드러난다. ‘실패한 은행 강도를 칭찬해주는 거나 다름없지 않을까’라는.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듬해 US오픈에서다. 퍼터를 대는 순간 강풍에 공이 반 바퀴 굴렀고 역시 1벌타를 자청했다. 하지만 그 대회에선 그러고도 우승을 한다. 미국골프협회(USGA)가 스포츠맨십 상을 ‘봅 존스 어워드’로 명명한 배경이다. 실제는 어떨까. 2012년 1월 ‘골프매거진’(미국 잡지)의 보도가 잘 말해준다. 미국프로골프(PGA) 선수의 캐디 50명 중 54%가 경기 중 부정행위를 봤다는 것이다. 보비 존스가 골프의 전설로 일컬어지는 이유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것 중 가장 값진 것은 골프라는 게임에 담긴 진정한 가치라 하겠다. 온갖 난관으로 무장된 코스를 기술과 정신력으로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얻게 되는 인내와 절제, 통찰력이다. 그건 그에게도 버거웠다. 그 역시도 코스를 탓하며 점수 내기에 급급했으며 미스 샷이 나면 욕설과 함께 클럽을 패대기쳤다. 그로 인해 출전 자격을 잃을 위기도 맞는다. 하지만 그는 위대한 골퍼로 우뚝 선다. 골프에 감춰진 미학을 깨친 연후다. 진정 극복할 대상이 상대선수나 점수가 아니라 자기와 마주한 코스이고 자기 자신이며 사람은 골퍼란 그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는…. 그러자 그토록 자신을 괴롭혀온 세인트앤드루스(스코틀랜드에 있는 세계 최초 골프장)의 올드 코스가 비로소 아름답게 다가온다.
그렇다. 우리 일상은 목표 달성을 위한 무한경쟁으로 점철된다. 그런데 그걸 위해 노력하는 우리 자세에 혹시 오류는 없을지. 진정 극복할 대상은 딴 데 있는데 주변 동료를 경쟁자 삼아 헛된 노력만 되풀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동반자를 경쟁상대로 삼고 타수로 드러나는 숫자놀음에만 치중하는 골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