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 국제부 차장
말랄라는 12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교육받지 못하는 아이들과 여성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세계인에게 호소했다. 올해 15세인 그는 지난해 10월 하굣길에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인 탈레반으로부터 왼쪽 이마에 총격을 받았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이 파키스탄 소녀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세계의 아이콘이 됐다.
그로부터 6일 뒤인 18일 충남 태안에서 고교생 5명이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사설 해병대 캠프에서 ‘교육’을 받던 도중 구명조끼도 없이 바닷물 속으로 내몰렸다가 사고를 당했다. 너무나 어이없이 꽃다운 생명이 져 눈시울이 절로 붉어졌다.
사고 10여 일이 지난 29일에도 인터넷에는 사설 ‘해병대’ 캠프가 넘쳐났다. 실전과 같은 유격훈련, 보트 뒤집기 훈련, 고공 강하훈련이 자랑처럼 등장한다. 교육의 효과를 알리는 슬로건은 ‘오직 강한 자만이 생존에서 살아남는다’이다.
그런데 이번 사고의 근원적인 문제가 과연 해당 민간업체에만 있을까. 본질을 파악하려면 ‘왜 17세의 고등학생들이 군대에서나 하는 훈련을 여름방학에 받아야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학교 학생들은 중학교 성적이 상위 3%에 드는, 공부라면 남에게 뒤지지 않는 학생들이다. 그래도 교사들은 제자들이 더 나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마련했을 것이다.
20대가 되면 한국 남자들은 대부분 군대에 가고, 거기서 유격훈련을 받는다. 그럼에도 대입에 도움이 된다는 명분으로 학생들에게 그런 힘든 ‘교육’까지 받게 하는 게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는 이런 캠프에 참가했다가 너무 가혹한 훈련을 받고 욕설까지 들었다는 다른 고등학교 학생의 진정이 접수되기도 했다.
말랄라는 ‘교육 받을 권리’를 강조한다. 교육의 왜곡과 과잉을 걱정해야 하는 한국의 학부모와 교사, 정부도 ‘왜 우리에게 교육이 필요한가’를 자문해야 한다. 진심으로 희생된 학생들의 명복을 빈다.
허진석 국제부 차장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