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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신석호]김정은의 ‘화려한 9월’ 시나리오

입력 | 2013-07-15 03:00:00


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친애하는 세계 시민 동포 여러분.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저와 북조선 인민의 진정 어린 뜻을 전하고자 합니다. 비록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했지만, 여러분이 바라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저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훈을 이웃 나라들과의 협력을 통해 관철해 나가고자 합니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포괄적 합의인 2005년 9·19공동성명 채택 8주년에 맞춰 중국 베이징(北京)을 방문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9월 19일 오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말했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취임 이후 공전됐던 6자회담의 화려한 재개를 알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김정은 개인에게는 첫 방중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화려하게 국제 외교무대에 데뷔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전 세계가 그를 주목했다. 더이상 미국 본토를 핵·미사일로 타격한다며 인민군 장성들을 모아놓고 미국 지도에 손가락질을 하던 올해 3월의 그가 아니었다. 그의 진정성에 회의적이던 미국도, 불안해하던 중국도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에 앞서 김정은은 6·25전쟁 종전 60주년 기념일인 7월 27일 CNN과 BBC 등 세계 유명 언론을 평양으로 불러들여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비핵화 사전조치를 전격 발표했다. 핵·미사일 발사 실험 유예와 우라늄 농축 중단,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 등 기존 2·29합의를 존중할 뿐만 아니라 숨긴 우라늄 농축시설 신고 등 이른바 ‘+α’까지 실천할 용의가 있다고 선언했다.

이어진 8월 한반도 남쪽에 따뜻한 ‘북풍’이 몰아쳤다. 가다 서다 하던 남북대화도 순풍에 돛을 단 듯했다. 개성공단 조업이 재개되고 8·15광복절을 계기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4년 만에 재개됐다.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회담도 시작됐다. 인도적 지원단체들이 각종 물자를 싣고 개성 육로를 넘어 방북했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간첩 혐의로 체포해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한 재미교포 케네스 배(배준호) 씨를 석방했다. 북-미 전문가 대화가 평양과 워싱턴에서 열리고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양국 당국 간 실무접촉이 아시아와 유럽의 제3국에서 열렸다. 2·29합의 파기 18개월 만에 북-미 당국자들이 머리를 맞댄 것이다.

김정은의 전향적인 태도에 오바마 행정부도 오랜 ‘전략적 인내’에서 벗어났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을 압박해 북한을 변화시킨다’는 자신의 정책이 성공했다고 자랑했다. ‘대화파’ 존 케리 국무장관도 뜻대로 되지 않는 중동 평화회담과 시리아, 이집트 사태를 뒤로하고 북한 문제에 매달렸다. 북한과의 대화는 내년 의회 선거에 민주당의 호재로 떠올랐다.

미중 양국이 10∼11일 워싱턴에서 전략대화를 갖고 북한 비핵화에 한목소리를 내기 직전 북한이 ‘7·27 전승기념절’을 맞아 서방 언론을 평양으로 초대하고 김성남 북한 노동당 국제부 부부장이 중국을 방문하는 등 ‘수상한’ 사실들을 놓고 워싱턴의 일부 한미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 만들어 본 ‘모두가 원하는’ 최선의 시나리오다.

물론 기자는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에 대해 지극히 회의적이다. 김정은은 미국 등 국제사회와의 대화를 통해 비핵화 논의를 진전시키고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그가 당면한 지상과제인 ‘3대 세습체제 공고화’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도발과 대외적 긴장 조성이 더 쉽고 확실한 처방이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지난해 12월 서울을 떠나기 전 이명박 정부 5년의 남북관계를 책으로 펴내면서 이런 논거로 북한이 남한 새 정부 5년, 오바마 2기 행정부 4년 동안 진정성 있는 남북, 북-미 대화에 나오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이것이 기자의 잘못된 예측으로 드러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나아가 8000만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 말이다.

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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