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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신작 ‘28’로 서점가 돌풍… 소설가 정유정 씨

입력 | 2013-07-15 03:00:00

‘낚시질’을 하든, 멱살을 잡든 독자를 끝까지 끌고 가는 게 내 임무




소설가 정유정 씨는 “소설은 인간에 대해 끊임없이 파고드는 장르다. 인간이 나의 영원한 테마”라고 말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소설가 정유정 씨(47)를 서울에서 만난 10일 아침, 신작 ‘28’(은행나무) 판매부수가 출간 한 달 만에 10만 부를 돌파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처음 전해 들었다”며 어리둥절해했다. 광주에 살고 있는 작가는 요즘 ‘28’의 인기로 서울행이 잦다.

지난주 한국출판인회의가 집계한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 따르면 ‘28’은 1위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2위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 를로리 소설에 이어 3위다. 모두 외국 작가들이 선점하고 있는 베스트셀러 5위권 안에 있는 유일한 한국 작가이다.

전작 ‘7년의 밤’이 30만 부가 팔린 데 이어 신작 ‘28’은 그보다 빠른 속도로 읽히고 있다. ‘28’은 끔찍한 전염병이 강타한 가상 도시 ‘화양’에서 28일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다. 눈동자가 시뻘겋게 되면서 사흘 만에 죽음에 이르는 병 앞에서 인간들은 속수무책이다. 개와 사람에게 공통으로 전염된다는 이유로 개들이 무참하게 살(殺)처분당하고 봉쇄된 도시에서는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의 아비규환이 펼쳐진다. 참혹한 묘사가 많은 소설과는 달리 그는 170cm의 키에 느긋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푸근한 인상이었다.

○ 내가 글 쓸 때 느낀 것 독자들도 즐겼으면

―사람 5명과 1마리 개의 눈으로 번갈아 전개되는 구성이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솔직히 처음에는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단선 구조를 썼다면 빠르게 읽혔을 텐데 캐릭터별로 풀어가는 다중시점이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독자들이 내가 쓸 때와 똑같은 느낌으로 이야기를 즐기길 바랐다. 혹여 빨리 읽히지 않을 수 있다는 걱정은 접속사, 형용사, 부사를 거의 쓰지 않는 것으로 풀었다. 내가 듣고 싶은 최고의 찬사는 ‘지난번 소설보다 한발 더 나아갔다’는 말인데, 나는 ‘28’을 ‘7년의 밤’보다 ‘한발 더 나아간’ 구조로 만들고 싶었다.”

느리지만 군더더기가 없는 말투에서 작가로서 갖고 있는 문장에 대한 집중력이 느껴졌다.

―주요 인물로 119구조대원과 간호사가 나온다. 119구조대원은 남편 직업이고 간호사는 작가 자신의 전직(前職)이다.

“나와 남편의 직업이 세간에 알려진 터라 소설에 등장시키기가 망설여졌던 게 사실이다…봉쇄된 도시에서 시민이 믿을 수 있고 시민에게 직업적으로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굴까 생각해 봤다. 경찰은…광주 항쟁 때도 경험했는데 시민이 전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 하지만 119구조대는 공권력 쪽에 있긴 하지만 ‘생명 구조’라는 임무 측면에서 시민들 편에 서서 헌신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소설 속 구조대원 ‘기준’의 성격은 남편과 다르다. 그는 불같고 감정에 치우치는 부분도 있지만 남편은 순둥이다(웃음). 기준의 성격은 막내 동생한테서 가져왔다.”

―‘기준’의 성격이 선악을 가르기 어려운 데 비해 수의사 ‘재형’은 전형적인 주인공의 모습이었다. ‘고뇌하는 슈퍼맨’ 같다고 할까. 어두운 과거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생명 사랑에 대한 신념이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모습 같은 게 그랬다.

“재형은 주인공이기 때문에 독자에게 신뢰를 줄 필요가 있었다. 주인공은 한니발 렉터(영화 ‘양들의 침묵’의 살인마) 같은 사이코패스일 수도 있고, 예수처럼 선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찌질하거나 자존심이 없거나 욕망이 없는 사람은 주인공이 될 수 없다. 그런 캐릭터는 큰 서사를 끌고 가는 데 힘이 붙질 않는다.”

그의 말에서 튀어나온 ‘큰 서사’라는 말에 언뜻 그가 소설을 쓰는 방식이 궁금해졌다.

―미리 얼개를 구성하나, 아니면 흘러가는 대로 쓰나.

“사람들은 내가 소설을 쓸 때 설계도면을 다 그려 놓고 나사 박을 자리까지 다 맞춰 놓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그렇다고 펜 가는 대로 쓰느냐 그것도 아니다. 절충형이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우선 시놉시스(개요)를 쓴다. 그리고 이론 공부에 들어간다. ‘28’의 경우 동물행동학, 동물심리학, 해부학 같은 자료를 읽고 필기해 가면서 공부했다. 이론 베이스가 깔리면 초고를 쓴다. 그 다음 필요한 세부 사항에 대한 취재 목록을 만들어 전문가를 찾아간다. 취재한 게 더해지니 초고보다 양이 불어난다. 이걸 줄여야 한다. 필요 없는 설명, 필요 없는 에피소드…. 솔직히 독자들 입장에선 전염병이 궁금하겠나, 전염병에 걸린 상황에서 인간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궁금하지. 공부하고 취재한 것을 작품에 다 쏟아놓고 싶은데 결국에는 다 쳐내야 한다.”

○ 초고 버리고 지리산에… ‘28’ 집필에 2년 3개월

그의 소설은 단순히 머릿속에서 나온 게 아니라 탄탄한 공부와 취재가 바탕이 된 것이다. 실제로 기자는 이번 인터뷰에 대학생 인턴기자와 동행했는데 잠시 자리를 비우고 돌아왔더니 작가는 인턴기자에게 “어떤 (취재) 현장에 나가 봤느냐” “취재 과정 중 어떤 때가 재미있느냐”는 질문을 쏟아 붓고 있었다.

―‘28’을 쓰는 데 얼마나 걸렸나.

“2년 3개월 정도 걸렸다.”

―그렇게 많은 사전 준비가 필요한가.

“중간에 슬럼프가 와서 시간이 더 걸렸다.”

―슬럼프라면….

“문단에서 ‘문학성이 없다’는 비판을 듣고 있었다. 속으로 ‘나도 문학성 있거든’ 이런 오기가 생겨 뭔가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초고가 의학논문이 반, 철학서가 반이었다. ‘스토리’가 없었다. 결국 6개월을 아무것도 못 쓰다 짐 싸서 지리산 암자로 들어갔다. 그리고 완전히 다시 썼다.”

○ 공모전 11번 낙방… 당선 소식에 욕실바닥서 엉엉


―초고를 다 버린 건가.

“‘눈 빨개진다’ 한 문장만 두고 다 버리다시피 했다(웃음). 나는 기본적으로 작품을 마지막 퇴고할 때 초고에 있던 에피소드가 10% 넘게 남아 있으면 실패라고 생각한다. 초고에는 클리셰(판에 박은 듯한 문구나 진부한 표현)가 많기 때문이다.”

작가는 “아예 7년쯤 전부터는 TV를 없앴다”고도 했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머리에 남아서다. 전에 봤던 영화나 소설의 에피소드 잔영들도 나도 모르는 새에 남아 있다. 초고는 영감에서 나온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익숙한 이야기다. 그걸 다 걷어내야 진짜 이야기가 나온다.”

그의 말대로 작가는 문단의 ‘아웃사이더’이다. 대학에서 문학 공부를 한 적이 없다. 간호대를 졸업하고 간호사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직원으로 14년 동안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다 서른다섯 살 되던 해에 회사를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가 소망을 이룬 것은 마흔한 살,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로 세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면서였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 전까지 공모전에 11번 떨어졌다. 내가 콤플렉스를 갖는 스타일이 아닌데 계속 떨어지니까 이게 아니다 싶었다. 그러다가도 다음 날 아침이면 ‘아니야, (작가가 되기 위한) 봉인이 아직 안 풀렸을 거야’ 하면서 다잡고, 저녁이 되면 다시 우울해지고…. 힘들었다. 하지만 사표까지 던지고 나 자신을 벼랑 끝에 세웠는데 포기할 수 없었다. 당선 연락을 받은 2007년 4월은 이번에도 떨어지면 정말 못 버티겠다 싶은 때였다. 화장실 변기 청소를 하던 중이었는데 아들이 전화를 받고 전해줬다. 평소에 ‘당선 통보가 오면 우아하게 침대에 앉아 ‘그런가요? 고마워요’ 하고 끊어야지,’ 했는데 욕실 바닥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가장 힘들고도 가장 기뻤던 순간이었다.”

그는 “기어이 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 사람은 자신을 벼랑 끝에 세우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그건 성격인가, 아니면 운명이라고 생각하나.

“어릴 때 별명이 원하는 게 있으면 무작정 들이받는다고 ‘앞뒤 안 보는 전차’였다. 소설가의 길을 택하고서도 앞뒤 안 보고 달렸다. 물론 그런 성격도 한몫했겠지만 운명도 믿는다. 어릴 때부터 글짓기 대회에 나가 상을 많이 받았는데 어머니가 작가가 되는 걸 반대했다. 희곡작가 지망생이던 외삼촌이 요절했기 때문이다. 내 이름이 고3 때 개명한 것인데 어머니가 내 옛 이름을 본 사주쟁이로부터 ‘글 쓰는 걸로 유명해지겠다’는 말을 듣고 재판까지 해가면서 바꾼 거다. 그렇게 이름을 바꿔 가면서까지 소설가의 길을 막았는데도 되었으니 운명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그간 작가들의 문단 데뷔 공식은 단편으로 평단의 평가를 먼저 받고 장편으로 이어지는데, 곧바로 장편을 내놓았다.

“나는 단편 체질은 아니다. 신춘문예 등단은 생각도 안 했다. 그동안 문단이 단편 위주로 흘러왔다고 생각한다. 발라드도 있고 메탈도 트로트도 있어야 건강한 음악이 된다. 나무 하나만 보는 게 아니라 다른 장르를 인정하면서 큰 숲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소설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의 선택과 운명, 그것이 내가 작품에서 담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이 극단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하게 되는 선택…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 선택을 통해 인간의 본성이 드러난다. 나는 그 사람의 선택이 그 사람의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28’에서 주인공 재형은 자신을 괴롭혀온 살인마 동해가 투견 링고에게 물어뜯기는 것을 보게 된다. 인간을 구할 것인가, 개를 구할 것인가 기로에서 재형은 개를 선택한다. 왜 인간만 중요한가, 인간 말고 다른 생명은 생명이 아닌가. 재형에게는 그런 ‘생명’을 지키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근본적으로 모든 생명은 귀하다는 것, 먹고 먹히는 게 생태계의 본질이지만 다른 종에 대한 존중과 감사가 바탕이 돼야 한다는 것, 이런 게 소설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 소설 생명은 재미… 상업적이란 말 두렵지 않아

―메시지가 너무 표면에 드러나면 소설이 촌스러워질 수 있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재미다. 소설이 일단 재미가 있어야 뭐라도 느끼지, 재미가 없으면 뭘 느끼겠나. 끝까지 페이지를 넘겨야 작가가 던지는 마지막 질문을 확인할 수 있는 거지. (독자의 시선을 낚는) ‘낚시질’을 하든지, 어떻게든 읽게 만들도록 멱살을 잡든지(웃음), 메시지를 읽게 하기 위해선 어떻게든 다음 페이지를 넘기게 해야 한다. 독자들을 끝까지 끌고 가는 것, 그게 나의 임무다.”

―소설이 죽었다는 시대에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독자들이 내 소설을 좋아한다면 그 이유는 ‘이야기’의 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평범하진 않지만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 그 속에서 감정의 극한까지 치달았다가 확 놓여날 때의 서늘한 파토스(예술적 격정, 비애감)를 독자들이 느끼게 하고 싶다. 대중적, 상업적이라는 말이 두렵지 않다. 소설만이 사람들이 밤을 새우면서 눈이 벌겋게 되도록 읽을 수 있는 장르다.”

이미지와 영상이 지배하는 뉴미디어 시대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글의 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작가를 만나고 돌아오면서 “매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매체에 담긴 영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소설가 정유정 씨는 ::

△1966년 전남 함평 출생
△광주 기독간호대 졸업 후 보훈병원 간호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직원으로 근무
△2007년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 당선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내 심장을 쏴라’ 당선

인터뷰=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