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시골마을에 정착한 노부부, 인터넷 서점시대 동네책방 고군분투 5년의 스토리◇빅스톤갭의 작은 책방/웬디 웰치 지음·허형은 옮김/440쪽·1만4800원/책세상
미국 탄광촌 작은 마을의 헌책방 ‘테일스 오브 론섬 파인’의 주인 잭 웰치(왼쪽)가 책방을 찾은 마을 주민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헌책방에선 소설보다 기묘한 일들이 벌어진다. 책세상 제공
도시에서 온 부부가 1903년 지어진 고택을 매입하고 헌책방을 연다고 하니 지역 주민들은 ‘미쳤어’를 연발한다. 주민들은 “언제 개점해요?”라고 묻지만 속으론 ‘1년도 못 버틸걸’ 하고 단정한다. 헌책방 운영이 처음이라 책도 부족했다. 책을 세워 놓으면 공간을 채우지 못해 눕혀 놓았더니 ‘책 시체 안치소’ 분위기를 풍겼다. 게다가 주민들은 “돈 벌면 곧 떠나겠지” 하며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부부는 여섯 가지 헌책방의 사명을 내걸었다. 마지막 사명은 ‘헌책 판매가 돈 벌기 어려운 장사임을, 그것이 일종의 신성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이 모든 일이 고객과 우리 모두 즐겁고 유쾌한 가운데 이루어져야 함을 명심한다’. 그리고 부부는 실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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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시련도 있었다. 부부는 대형마트에서 직원 눈을 피해 게릴라 홍보전을 펼칠 정도로 용감했다. 하지만 과거 직장 상사였던 마을 토박이와 틀어지자 마을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등을 돌려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다. 다행히 지역신문에서 헌책방의 매력을 우리네 맛집 소개처럼 맛깔나게 보도해 극적으로 부활했다.
책이 쌓여 가니 사람에 얽힌 이야기도 쌓여 갔다. 책을 팔러 온 사람은 책과 함께 자신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남기고 떠났다. 한 남자는 죽은 아내의 책을 팔고, 다른 남자는 바람난 여자친구가 남긴 책을 판다. 책 사러 온 사람도 마찬가지. 한 남자는 어린이용 고전을 고르더니 “집이 불타 책도 사라졌다.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책이라 새로 사서 꽂아 두려고 한다”고 말한다.
뭉클한 순간도 있었다. 부부는 ‘땅꼬마’란 별명을 가진 단골 노인을 반기지 않았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늘 시끄럽게 떠드는 수다가 불편했다. 땅꼬마가 죽은 뒤 찾아온 딸은 “아버지를 인간으로 존엄성을 느끼게 해줘 고맙다”고 전한다. 땅꼬마는 문맹인 퇴역군인이었다. 그는 똑똑한 헌책방 주인이 친구인 걸 자랑스럽게 여겼다. 책을 읽지 못하는 땅꼬마는 헌책방에서 산 책 대부분을 재향군인회에 기증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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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늦은 탓인지 손님은 기자 혼자였다. 책을 다룬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자 소설가 김훈의 ‘내가 읽은 책과 세상’을 추천했다. 낡은 책이라 망설이는데 초판본이고 절판본인 데다 더는 작가가 문학 에세이를 쓰지 않을 테니 소장가치가 있다고 한다. 1989년에 나온 4200원짜리 책을 1만5000원에 구입했다. 윤 씨가 말했다. “주변에서 헌책방을 찾아보면 의외로 많이 있을 거다. 잘 살펴보면 걸어서 5분 거리의 헌책방도 찾을 수 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