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광암 경제부장
박 대통령은 이 회의를 통해 수출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대외여건이 나빠서 수출목표 달성이 위태위태할 때는 “목표 달성을 못하면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각료들이 사표를 내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수출진흥확대회의는 수출을 가로막는 ‘대못’과 ‘손톱 밑 가시’를 뽑아내는 자리이기도 했다. 1967년 3월 부산에서 회의가 열렸을 때는 중소기업은행 부산지점의 대출을 놓고 “왜 대출이 양조장에 편중됐느냐” “담보가 없다고 유망한 기업에 대출을 안 해줘서 되겠느냐”고 대통령이 조목조목 지적해 지점장은 실신지경이 되고, 은행장은 진땀을 흘렸다.
어제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2차 무역투자진흥회의가 청와대에서 열렸다. 이 회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든 수출진흥확대회의의 골격을 그대로 답습한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한국경제 구조가 고도화함에 따라 회의의 주제가 ‘수출’에서 ‘무역(=수출+수입)+투자’로 확대됐지만 회의의 성격·시간·형식, 대통령의 회의 주재 스타일까지 판박이에 가깝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이 회의에 얼마나 힘이 실릴지를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때로 경제계는 정부가 두툼한 보고서에 담아 내놓는 정책패키지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나 작은 몸짓 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박 대통령은 이날 토론을 마무리하면서 “투자를 하는 분들은 업고 다녀야 한다. 이분들이 경제를 살리는 거고, 일자리를 만드는 거고, 소비도 활성화하는 거고, 나라를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의 투자를 당부하기 위해 대통령이 ‘립서비스’를 한 적은 과거 정권에서도 많았지만 “업고 다니겠다”는 파격적인 수사를 한 대통령은 없었다.
박 대통령은 또 이날 회의에 빨간색 재킷을 입고 나왔다. 그 의미에 대해서는 박 대통령이 “우리 경제에 많은 열정을 불어넣어 경제를 활력 있게 살려야 한다는 뜻을 담았다”고 직접 설명하기까지 했다. 박 대통령은 대선 전날인 지난해 12월 18일 증권거래소를 방문했을 때도 빨간색 재킷을 입었고, 역시 비슷한 설명을 했다. 지난달 중국 방문 때도 빨간 재킷을 입은 적이 있다. 양국의 경제인들이 참여한 한중비즈니스포럼에서 연설을 할 때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9년 2월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앞두고 “한국경제는 외바퀴자전거다. 줄곧 달려야지 멈추면 넘어진다”며 ‘외바퀴자전거론’을 편 적이 있다.
천광암 경제부장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