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국책 금융기관 총동원
한국은행은 직접 회사채를 사들이지는 않지만 정책금융공사에 유동성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취약업종 지원에 나선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중앙은행이 특정 사(私)기업을 위해 돈을 찍는 ‘발권력’을 동원하는 게 타당한지 논란이 커지고 있다.
○ 정부, 회사채 시장에 6조4000억 원 투입
금융위는 건설사를 돕기 위해 운영해 온 ‘건설사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을 이달부터 ‘시장 안정 P-CBO’로 확대 개편해 다른 취약 업종으로 지원을 넓히기로 했다. P-CBO란 신용도가 낮은 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를 모아 이를 담보로 발행하는 증권을 일컫는 말이다. 즉 정부가 어려운 기업의 채권을 사들인 뒤, 신용보증기금이 보증하는 P-CBO에 편입하고 이를 일반 투자자에게 판매하는 방식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정부는 저신용등급 회사채 중 20%를 각 기업이 자체 상환하는 조건으로 80%를 산업은행을 통해 사들이기로 했다. 산은 인수분의 60%는 신용보증기금이 보증하는 P-CBO에 순차적으로 편입해 일반 투자자에게 매각한다. 여기에 들어갈 보증비용 8500억 원은 신보 여유재원(1500억 원)과 기획재정부, 정책금융공사가 출연한 자금(각 3500억 원)으로 충당한다. 나머지 40%에 대해서는 금융투자업계(10%)와 채권은행(30%)이 각각 인수한다.
이 과정에서 발행될 P-CBO는 6조4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올 하반기에 만기가 도래하는 신용등급 A등급 이하 회사채가 10조 원이고 이 중 취약 업종 회사채가 4조7000억 원 규모다. 이를 감안할 때 6조4000억 원 정도면 회사채 시장을 살리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게 금융당국의 생각이다.
○ 한은 정책금융공사 유동성 지원
이번 대책에서 눈길이 가는 부분은 ‘한은의 자금 지원’이다. 낮은 금리로 정책금융공사에 10조 원 규모의 자금을 빌려줘 그 운용수익으로 정책금융공사가 3500억 원 규모의 보증재원을 마련하도록 할 방침이다. 금융당국은 한국은행법의 ‘금융기관에 대한 대출’ 규정을 들어 이번 지원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통화가치 안정을 금과옥조로 여겨야 할 중앙은행이 이렇게 쉽게 자금 지원에 나서는 건 두고두고 좋지 않은 선례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한은이 찍어낸 돈은 결국 금융시장 전체로 퍼져 화폐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산은 등 국책 금융기관들이 사실상 세금을 바탕으로 조성하는 정책자금으로 과도하게 비우량 채권을 사들였다가 향후 큰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