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LG 돌풍의 원동력은 마운드 안정화에 있다. 끊임없이 연구하는 지도자, LG 차명석 투수코치의 공이 컸다. 차 코치는 “김기태 감독님의 야구가 꽃필 수 있도록 뒤에서 잘 준비해놓아야 한다”며 자세를 낮췄다. 잠실|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seven7so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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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의 신바람 야구가 부활하고 있다. 김기태 감독을 필두로 선수단이 하나로 뭉쳐 선전을 이어가고 있다. 10년간 실패했던 ‘가을야구’에 대한 기대감도 여느 때보다 높다. 공·수·주에서 모두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투수 부문의 변화가 가장 눈에 띈다. LG는 지난달 팀 방어율 1위가 됐다. 일시적 현상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지만, 그 후 한 달간 자리를 지켰다. 7일 현재 LG는 팀 방어율 3.84로 롯데(3.86)를 제치고 1위를 달리고 있다. 투수 파트를 책임지는 차명석(44) 코치의 공이 컸다. 차 코치를 만나 LG 마운드와 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선발을 강화하기 위해 선발을 키운다? NO!
불펜이 좋아야 이닝 부담 덜고 맘 편히 던져
김기태 감독 신뢰 속에 신바람 마운드 완성
2∼3년 안에 최강 삼성 마운드 따라잡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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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노트만 10권…연구와 노력만이 살 길
● 목표는 2∼3년 내로 삼성 추월!
한 달 넘게 LG가 팀 방어율 1위를 기록 중이지만, 차명석 코치는 “여전히 일시적”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몇 년째 투수강국으로 불리며 국내프로야구에서 최강의 마운드를 구축한 삼성과 비교하면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자평한다. 그러나 1위가 될 수 있는 희망도 보인다고 했다. 차 코치는 “스프링캠프를 시작할 때 ‘이르면 2∼3년 안에 삼성을 잡겠다’고 했다. 단장, 감독, 선수들에게까지 공표했다. 일부는 ‘얘가 미쳤나’라는 분위기였다. 선수 구성을 봤을 때 2015년까지는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목표까지 가는 과정에 있다고 보는 게 맞다”고 진단했다.
● 역발상이 빚어낸 파란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LG 마운드는 탄탄해졌다. 그 중에서도 선발진의 도약이 눈부시다. 지난해 마땅한 토종 선발이 없어 고생했던 LG가 1년 만에 안정된 선발로테이션을 가동하고 있다. 차명석 코치의 역발상이 빚어낸 결과다. 차 코치는 “선발을 강화하기 위해 선발을 키우면 안 된다. 역설적으로 불펜이 좋으면, 선발은 마음이 편해진다. 5∼6이닝만 막으면 되니까. 그렇게 하면 7∼8이닝도 던질 수 있다. 투수진의 조화가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올해 김기태 감독이 ‘선발 키워야 하지 않겠냐’고 하셨을 때 지금의 불펜 요원들이 자기 실력만 하면 선발들이 편하게 던질 것으로 봤다. 지금까지는 구상이 잘 맞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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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석 코치는 시즌을 준비할 단계에서 ‘누가 잘해줄까’보다는 ‘누가 안 될까’를 먼저 생각했다. 그래야 투수진을 문제없이 꾸려갈 것으로 판단했다. 만약을 대비했던 덕분에 LG는 부상과 부진 등으로 핵심 선수가 전력에서 이탈했지만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차 코치는 “부진할 선수들에 대한 예상이 적중했다. 그걸 맞춰 대비를 했다. 유원상의 경우 대표팀 합류로 훈련 부족 등이 우려됐다. 지독한 슬로스타터 이동현의 활용을 놓고도 많이 생각했다. 4월 이동현이 부진할 게 보였지만, 2군에 보내지 않고 구위를 올리기로 했다. 임정우를 필승조로 선택해 4월을 보내며 이동현에게 시간을 줬다. 그런 계산들이 맞아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 볼넷 감소는 김기태 감독 덕분
전문가들이 LG 투수진을 분석하며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볼넷이 눈에 띄게 줄었다”이다. LG는 볼넷이 삼성에 이어 2번째로 적은 팀이다. 차 코치는 그 비결로 김기태 감독을 꼽았다. 그는 “감독님의 역할이 컸다. 투수가 맞는 것에 대해 전혀 이야기 안 하신다. 결과 나쁘다고 선수를 2군으로 보내지도 않는다. 선수들에게 ‘얻어맞는 투수에게는 기회를 주는 대신 도망가는 투수에게는 기회가 없다’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전달됐다. 감독님의 철학이 선수들에게 강하게 전달된 듯하다”고 털어놓았다.
LG 투수들의 볼넷을 줄이기 위해 차 코치가 마련한 훈련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를 공개하진 않았다. 그는 “얘기하기 부끄럽다. 적어도 3∼5년 정도 꾸준하게 좋은 성적을 거두면 말하겠다. 해설할 때 메이저리그를 보며 느낀 것, 코치를 하면서 투수들이 실패한 것을 종합한 노트가 있다. 그 안에 다 있다. 언젠가 투수코치가 되면 이렇게 준비하겠다고 정립해놓았다”고 힌트를 줬다.
● 리더의 조건은 신뢰, 참모의 조건은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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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성에서 출발한 10권의 노트
차명석 코치의 별명은 ‘차 박사’다. 그만큼 노력을 많이 한다. 홈경기가 있는 날 오전 9시에 출근한다. 경기장에서 약 한 시간 정도 운동하며 당일 투수진 운영을 구상한다. 10년간 야구를 보며 메모한 노트가 이제는 10권이 됐다. 자기 발전을 위해 한 달에 4권 이상의 책을 읽는다. 그래서 그의 취미는 ‘읽기, 쓰기, 걷기’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준비로 마운드 운영에 공을 들이고 있다.
차 코치는 “9개 구단 투수코치 중 나보다 야구를 못 한 사람이 없다. 모두 스타 출신이다. 내가 투수코치가 됐을 때 주위에서 반대가 많았다. 그런 것을 알기에 더 노력하지 않으면 못 버틴다. ‘LG는 투수코치의 무덤’이라고 불렸다. 2년마다 투수코치가 바뀌었다. 나도 이제 2년째다. 준비를 안 해놓으면 늘 불안하다”고 말했다.
● 위기 속에 내재된 기회
차명석 코치는 메이저리그 해설가로도 명성을 날렸다. 10년이 지났지만 그가 방송에서 했던 어록은 지금도 회자된다. 입담도 좋지만 스스로를 낮춰 해설했던 게 시청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다른 해설가들과의 차별성을 둔 전략이었다. LG 투수코치를 수락했을 때도 같은 생각이었다. 아무도 이루지 못한 것을 해보자는 도전의식에서 출발했다. 차 코치는 “쉬운 것은 재미없다. 어려운 게 재미있다. 1년 계약이기 때문에 늘 잘린다고 생각한다. 잘 되는 팀을 만드는 것은 부각이 안 된다. 남이 못하는 걸 해야 부각도 된다. 난 위기라는 말에 기회라는 뜻이 포함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투수코치직을 수락한 배경을 설명했다.
● “난 가장 행복한 투수코치”
차명석 코치는 김기태 감독으로부터 투수에 관한 전권을 부여받았다. 류제국이 2군에서 잘 던지고 있을 때 1군으로 조기 호출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그 때 ‘원래 스케줄대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 이가 바로 차 코치였고, 김 감독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차 코치는 “투수코치에게 모든 권한을 주신 감독을 못 봤다. 이렇게 많은 권한을 주나 싶을 정도다. 4년을 모셨는데, 투수에 관해 얘기하면 내가 부끄러울 때가 많다. 명타자 출신인데, ‘투수 공부를 언제 이 정도까지 했나’ 싶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치에게 다 준다는 것은 보통 그릇이 아니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어 “참모인 코치는 선수와 감독만 보면 된다. 모두가 반대했을 때, 감 감독님이 ‘누가 뭐라고 해도 내 마음엔 너다’라며 투수코치직을 맡겼다. 어떻게 그런 분을 잘 안 모실 수 있겠나. 감독님의 야구가 꽃필 수 있도록 뒤에서 잘 준비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 코치는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어록을 남겼다. “사람은 죽고, LG 트윈스 투수코치는 잘린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으려 더 노력한다.”
최용석 기자 gtyong@donga.com 트위터@gtyong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