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시집후 60년… 17번째 시집 ‘심장이 아프다’ 펴낸 김남조 시인
시집 ‘심장이 아프다’를 펴낸 김남조 시인(86). “지금 이 나이가 되면 같이 걸어오던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집니다. 그 풍경 속에서 삶의 갸륵함과 아픔을 느끼게 된다”고 그는 말했다. 왼쪽 사진은 시집 ‘심장이 아프다’의 표지.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그는 폐에 석회가 침착되는 질환을 앓고 있는데 폐와 심장의 기능이 약화되자 의사가 산소발생기 사용을 권했다. “어떤 밤에는 숨이 가빠져서 깰 때도 있어요. 전에는 숨을 쉰다는 것이 가장 평범했는데 처음 숙연해졌죠. ‘나와 이것(심장)이, 둘이 함께 살았었구나. 내 안에 내가 하나 더 있었는데 그동안 가려져 있었구나’ 싶었죠.”
김 시인이 17번째 시집 ‘심장이 아프다’(문학수첩)를 최근 펴냈다. 여든이 넘어 찾아온 삶의 깨달음과 사색을 영롱한 시어들에 담았다. 1953년 6·25전쟁으로 부산에 피란 갔다가 펴낸 첫 시집 ‘목숨’(수문사)이 세상에 나온 뒤 꼭 60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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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이번 시집을 내며 “절실하고 심각했다”고 말한다. 젊었을 때는 약간의 재능도 있고 예술적 흥분과 목마름도 있어 열심히 썼는데 이번엔 무언가 자신의 밑바닥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시로 옮겼다고 한다. 이른바 ‘뿌리론’이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지상의, 반의 풍경만 보다가 그 밑의 절반인 지하, 뿌리를 생각해보게 됐어요. 우리의 인내와 양분을 꼭대기까지 끌어올리는 인고와 아픔들이죠. 모든 생명체가 최선을 다해서 삶이라는 등불을 발화시키는 것 같아요.”
시인은 이것을 시로 옮겼다. ‘…겨울나무는 이제/뿌리의 힘으로만 산다//흙과 얼음이 절반씩인/캄캄한 땅속에서/비밀스럽게 조제한 양분과 근력을/쉼 없는 펌프질로/스스로의 정수리까지/밀어 올려야 한다…겨울나무들아/새 봄 되어 초록 잎새 환생하는/어질어질 환한 그 잔칫상 아니어도/그대 퍽은/잘생긴 사람만 같다’(시 ‘나무들’에서)
가까이 지내던 출판사와 후배들이 출간기념회를 열자고 청했지만 시인은 고사했다. ‘첫 시집이 환갑을 맞는 일’은 문단에서도 드문 일이지만 시인은 “좀 부끄러워 그랬다”며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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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얘기는 지난 60년의 순간순간을 오가며 이어졌다. 1951년 피란지 부산에서 열렸던 서울대 졸업식, 서정주 선생과의 인연, 자택 공사 진척 상황 등이었다. 최근 논란이 돼 절판에 회수까지 된 한국시인협회의 인물시집 ‘사람’(민음사)에 이르자 그는 조심스레 말했다.
“일부 생각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100명이 넘는 시인이 참가한 시집이 절판되는 것은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죠. (논란이 된) 몇 편의 시를 빼고서라도 출간이 재개됐으면 좋겠어요.”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