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치부 기자
이 세 사람, 묘하게 닮았다. 넉넉한 풍채에 유난히 짧은 목. 누군가는 이들 세 사람의 외모가 한민족의 ‘표준 외모’로 잘못 알려질까 걱정된다며 농을 했다. 한 핏줄이 서로 닮는 건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그래서였을까.
얼마 전 신문에 실린 김정은 사진에 시선이 확 꽂혔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나이 지긋한 최룡해 총정치국장과 김격식 총참모장 등 군 수뇌부가 수첩에 무언가를 열심히 받아 적고 있었다. 그 옆에서 우산을 받쳐 든 채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김정은은 아마도 “날래 하라우”를 연발하며 온갖 지시를 쏟아냈을 것이다.
결국 정홍원 총리가 발끈했다. 며칠 전 간부회의를 주재하다 “정수리가 아닌 눈 좀 보고 회의를 하자. 받아쓰기 좀 그만하고 의견을 나누자”고 사정했다.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측은함마저 든다.
박 대통령은 그제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주재하면서 “제2의 경제 부흥을 이루려면 기존 방식이나 관행을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고 했다. 관료사회의 첫 번째 관행을 꼽으라면 윗사람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꿈쩍하지 않는 것이다. 받아쓰기란 그런 경직성의 산물이다.
4일이면 박 대통령 취임 100일이다. 청와대 출입기자인 필자도 그 사이 무수히 많은 박 대통령의 발언을 받아썼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한결같아서 이제는 어디서 무슨 얘기를 할지 대강 알아맞힐 수준이 됐다. 그러면서 의문도 커졌다. 왜 같은 얘기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반복할까.
여러 청와대 관계자들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박 대통령은 시스템을 바꾸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시스템이 하루아침에 바뀌겠는가. 그러니 같은 주문을 지겹도록 반복할 수밖에 없다.
이재명 정치부 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