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훈 사회부 차장
작가 마이클 크라이턴(1942∼2008)은 소설 ‘쥐라기공원’(1990년)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1993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영화화해 전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했던 이 작품은 화석에 있는 모기의 피에서 공룡의 유전자(DNA)를 얻은 뒤 개구리의 유전자와 결합해 6500만 년 전 공룡을 되살린다. 코스타리카 서해안의 한 섬에 순한 초식(草食) 브라키오사우루스부터 포악한 육식(肉食) 티라노사우루스까지 방목된다. 표면적으로는 ‘생태 복원’이었지만 실제로는 공룡을 ‘돈벌이용’으로 생각한 게 재앙의 시작이었다. 공룡을 제어하는 전기 담장의 전원이 꺼지면서 공원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다. 인간은 공룡을 상품화하려다 오히려 쫓기는 신세가 된다. 결국 인간은 공룡을 피해 섬을 떠나야만 했다. ‘대자연은 결코 인간이 인위적으로 창조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존재’라는 메시지였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리산 반달가슴곰(천연기념물 제329호) 얘기다. 환경부는 2004년부터 반달곰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당시 지리산에는 야생 반달곰이 5, 6마리(추정치)뿐이어서 인위적인 방사로 개체수를 늘리자는 취지였다.
그런 반달곰이 최근 지리산에 터를 잡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올해 개체수가 27마리(추정)로 늘었다. 활동 면적도 성체 기준으로 66.44km²(약 2010만 평)나 돼 지리산 전역(472km²·약 1억4600만 평)을 이동할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반달곰의 활동 영역이 넓어질수록 인간의 영역은 좁아진다. 등산객에게 반달곰은 위험한 존재가 되고 있다. 환경부는 5월 지리산 탐방로를 전면 개방하면서 겨울잠에서 깬 반달곰을 만났을 때 조용히 자리를 피하거나 나무나 바위 뒤로 숨는 등 대처 요령을 알리고 있다. 인간이 반달곰을 복원하려다 되레 이들을 피해 다녀야 할 상황이 됐다.
지리산 반달곰이 자연 속에서 겨울잠을 자고 새끼를 낳았다는 소식은 언제 들어도 가슴 뿌듯하다. 하지만 이들의 개체수가 계속 늘어날수록 통제는 어려워진다. 혹시나 반달곰이 지리산 등반객을 공격하는 사건이라도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그들의 운명은 ‘복원’이 아닌 ‘포획’ 쪽으로 가닥이 잡힐지 모른다.
지리산 반달곰을 복원한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이들이 야생 속에서 번식했을 때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게 문제다. 반달곰 모두에게 전파발신기를 부착할 수도, 지리산 탐방로 외 지역에 모두 전기 방어막을 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지리산 반달곰에게 “지금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어떤 답이 돌아올까. “도대체 우리 보고 어쩌란 말이냐”고 토로하진 않을까. 이제라도 정부 차원에서 야생동물 복원과 인간의 상생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지리산은 인간과 반달곰 모두에게 꼭 필요한 ‘공원’이기 때문이다.
황태훈 사회부 차장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