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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허승호]청소년한테 봉변당하는 어른들

입력 | 2013-05-15 03:00:00


단원 김홍도의 그림 ‘서당’에서는 방금 회초리를 맞은 학동이 한 손으로 대님을 매고 다른 손으로 눈물을 훔친다. 훈장은 굳게 다문 입으로 복잡한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등장인물의 감정을 잘 그려낸 걸작으로 평가된다. 교편(敎鞭)은 원래 ‘선생님의 매’라는 뜻이다. 그러나 ‘회초리=교육’의 등식은 무너진 지 오래다. 요즘은 공원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소주를 마셔도 못 본 체하는 게 상책이다. 청소년들의 일탈을 꾸짖다가 봉변을 당한 노인들의 이야기도 가끔 들린다.

▷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 팀의 주장 이현호 선수가 아파트 놀이터에서 담배를 피우는 남녀 중고생 5명을 나무라자 이들은 오히려 “아저씨가 뭔데…” “아저씨 돈 많아요?”라며 대들었다. 당돌한 반응에 이 씨가 이들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때렸고 한 여학생이 경찰에 신고했다. 이 선수가 체격이 큰 운동선수가 아니었더라면 아마 더 큰 낭패를 겪었을 것이다. 부모들의 반응이 흥미롭다. 이 씨에게 “오히려 내가 고맙다” “더 따끔하게 혼내 주라”고 말한 부모도 있었지만 두 여학생의 부모는 이 씨의 처벌을 원했다.

▷아들이냐, 딸이냐에 따라 부모의 반응이 갈렸다는 점도 흥미롭다. 딸자식을 둔 부모는 시시비비를 가릴 새 없이 ‘나도 안 때리는 우리 애를 때리다니…’ 하는 마음부터 드는 것일까. 어쨌거나 이 씨를 비난하는 여론은 많지 않다. “요즘 중고딩 담배 피우다 걸리면 대응 매뉴얼이 있는 듯… 신체 접촉 시 고소!”라는 반응도 있다. 이 선수에 대해서는 “윤창중 사건으로 참담해진 국민을 위로하는 영웅”이라는 찬사까지 있었다.

▷이 씨는 “손을 댄 것은 잘못이다. 그냥 죗값을 달게 받겠다. 고소 취하 합의를 본다면 마음이 더 불편할 것 같다”면서 “앞으로도 잘못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는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즉결심판에 넘어가면 20만 원 남짓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소속 구단에서는 “그런 학생들을 보면 훈계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라며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청소년의 탈선을 보고도 어른들이 “내 자식이 아닌데…”라고 눈감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