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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사재기는 작가인생 모독” 황석영 이어 김연수씨도 절판 선언

입력 | 2013-05-09 03:00:00


소설가 황석영(70)의 장편소설 ‘여울물 소리’(자음과모음)가 사재기 논란에 휩싸였다.

황석영은 의혹이 일자 본인은 전혀 몰랐던 일이라며 책의 절판에 이어 출판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내겠다고 밝혔고, 해당 출판사 대표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에 앞서 SBS 시사프로그램 ‘현장21’은 7일 방송에서 자음과모음이 펴낸 ‘여울물 소리’를 비롯해 김연수의 장편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과 백영옥의 장편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모임’에 대한 조직적인 사재기 의혹을 제기했다.

본보는 8일 입장을 듣기 위해 황석영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황석영의 부인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황석영 선생님이 출판사 사장에게 ‘사재기를 했느냐’고 수차례 물었지만 사장은 방송이 나가기 전까지 ‘절대 안했다’고 부인했다. (선생님은) 사재기와 무관하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소송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황석영은 7일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여울물 소리’는 작가 인생 50년을 기념하는 작품으로 이런 추문에 연루된 것 자체가 나의 인생 전체를 모독하는 치욕스러운 일”이라며 “책을 절판하고 출판사에 명예훼손에 대한 정신적·물질적 피해 배상과 민형사상 책임을 단호히 물을 것”이라고 했다.

소설가 김연수(43)는 “출판사가 사재기한 사실도 몰랐고, 제 책을 사재기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편집자에게 물었더니 사재기 사실을 인정했다. 제 책을 절판하고 (배포된 책은) 회수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사재기 의혹이 확산되자 강병철 자음과모음 대표는 8일 보도자료를 내고 “어떠한 유형의 변명도 하지 않겠다. 대표로서의 모든 권한을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이 출판사에 다니던 황석영의 딸은 2개월 전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는 3개월 안에 전문경영인을 선출해 타개책을 마련할 계획이지만 강 대표가 서울 서교동 사옥 매각 방침까지 밝혀 당장 사무실 공간부터 마련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 출판사의 사재기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8월 사재기 감시기구인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는 자음과모음이 2011년 출간한 남인숙의 ‘어쨌거나 남자는 필요하다’에 대해 ‘사재기 의심’ 결정을 내렸다(본보 2012년 8월 29일 A13면).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를 바탕으로 300만 원의 과태료 처분을 내렸지만 출판사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까지 냈으나 올 2월 패소했다.

전문가들은 반복되는 사재기 논란에 대해 베스트셀러 위주의 출판 시장 구조를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편법을 써 일단 순위에 올려놓으면 판매에 탄력이 붙는다. 사재기로 적발돼도 출판문화산업진흥법상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만 물면 되기 때문에 ‘솜방망이’ 처벌이란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연구원은 “사재기가 적발되면 더이상 출판업을 할 수 없도록 강력하게 제재해야 한다”며 “문제는 일부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가 출판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데 있다. 영화계의 영화진흥위원회처럼 공신력 있는 단체가 전국 판매량을 집계하는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420여 개 출판사가 참여하는 한국출판인회의는 8일 ‘사재기를 통한 베스트셀러 조작에 관련한 입장’이란 제목의 보도자료에서 “사재기는 명백한 범죄행위”라며 “처벌 조항이 과태료가 아닌 벌금형으로 엄격히 강화될 수 있도록 법·제도 개선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