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냄새 나는 선수 훈련 안시켜 vs 지각한 선수 공항에 두고 출발프로배구 6연패 신치용 감독-프로농구 3회 우승 유재학 감독… 첫 만남서 ‘또다른 나’를 보다
프로배구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왼쪽)과 프로농구 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코트의 독재자’를 자처한다. 선수를 아끼되 믿으면 안 된다는 지론에서다. 이는 “감독님 말만 들으면 우승할 수 있다”는 선수들의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두 명장은 입을 모아 “최근 일부 구단의 감독 경시 풍조는 팀을 망치는 일이다. 선수들은 그런 감독을 따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 감독의 사진을 한 장으로 합성 처리했다. 동아일보DB
○ ‘15분 전 문화’…준비된 자가 이긴다
기자가 두 감독을 만나기로 한 시간은 26일 오전 11시였다. 두 사람은 따로 출발했지만 약속이나 한 듯 동아미디어센터 로비에서 조우했다. 10시 40분도 안 됐을 때였다.
광고 로드중
▽유 감독=나도 비슷하다. 한번은 버스가 출발하는데 고참 선수가 뛰어 오더라. “너 필요 없다”고 한 뒤 그냥 갔다. 그 선수가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타고 톨게이트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각한 외국인 선수를 공항에 남겨 둔 채 비행기를 탄 적도 있다.
▽신 감독=작전타임 때 보면 준비가 된 팀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1년 내내 손발을 맞춰 왔는데 무슨 긴 말이 필요한가. ‘야, 너 뭐하는 거야’ 한마디면 선수 본인이 뭘 잘못하고 있는지를 알 정도가 돼야 한다. 물론 코트를 나누는 배구와 몸싸움을 하는 농구는 다를 것이다. 그래서 유 감독은 ‘만수’(萬手·1만 가지 지략을 갖고 있다고 해서 얻은 별명)이고 나는 천수(千手)쯤 될 거다. 혼자 우승한다고 욕을 바가지로 먹는 나와 비교해 3년에 한 번씩 우승하는 것만 봐도 나보다 한 수 위다(웃음).
(실제로 유 감독은 2006∼2007, 2009∼2010, 2012∼2013시즌에 우승했다.)
▽유 감독=신 감독님이 한 인터뷰에서 ‘초보는 자기 팀만 보고 노련한 감독은 상대를 본다’고 말씀하셨는데 전적으로 동감한다. 고스톱을 칠 때도 내 패만 봐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것 아닌가. 중요한 경기일수록 작전과 지시는 간단해야 한다. 이는 철저한 준비가 뒷받침될 때만 가능하다.
광고 로드중
삼성화재 선수들은 취침 전 휴대전화를 반납한다. 간식으로 라면을 먹는 일도 없다. 모비스 선수들은 방문경기 때도 선수단 모두가 아침 식사를 함께 한다. ‘프로가 아니라 고교 팀’ ‘선수 인권 탄압’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신 감독=라면회사에서 싫어할지 모르겠지만 운동선수가 밤에 라면을 먹는 것은 다음 날 몸 상태에 큰 지장을 준다. 휴대전화 역시 마찬가지다. 늦은 밤에 전화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술을 먹고 있을 텐데 그런 통화를 하다 잠을 못 자면 훈련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다. 좋은 생활이 좋은 훈련과 좋은 경기로 이어진다.
▽유 감독=휴대전화까지 통제한다니 정말 치밀하다. 나도 한번 생각을 해 봐야겠다(웃음). 아침에 보면 선수 상태를 안다. 준비가 덜 된 선수들은 운동을 몇 배로 시킨다. 술 냄새를 풍기는 선수는 버스에 안 태우고 뛰게 한다. 간섭은 안 하지만 사생활이 지장을 주면 훈련을 통해 반드시 제재를 한다.
▽신 감독=결국 사생활을 통제하는 것 아닌가(웃음). 나는 유 감독과 달리 훈련을 아예 안 시킨다. ‘다른 선수들에 피해 주지 말고 쉬라’고 한다. 훈련을 안 하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아야 한다. 하루 쉬고, 이틀 쉬다 보면 영원히 쉬게 되는 거다.
광고 로드중
처음으로 자리를 함께한 신치용 감독(오른쪽)과 유재학 감독. 신 감독은 “평소 팬인 데다 TV를 통해 많이 봐서 그런지 알고 지낸 사이처럼 편하다”고 인사했고, 유 감독은 “종목은 달라도 꼭 한 번 뵙고 싶었는데 영광”이라고 화답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신 감독=감독은 악질이어야 한다. 단, ‘합리적 악질’이라야 한다. 선수를 억압하는 듯 보여도 결국은 그게 선수의 미래를 위한 길이다. 선수들을 아끼되 믿으면 안 된다.
▽유 감독=맞다. 선수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문제가 없다. 무조건적인 강압과는 다르다. 단체 종목은 한계를 뛰어넘어야 되는데 혼자서는 못한다. 자율을 주면 다 중간에 포기한다.
▽신 감독=그동안 악질 감독이라고 욕 많이 먹었는데 유 감독도 대단한 악질이다. 동지를 만나 반갑고 기분이 좋다. 그러고 보니 오늘 자리는 ‘악질 단합대회’다.
유 감독이 자신은 악질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이에 동석한 기자가 “선수들한테 물어 보니 모두 악질이라고 하던데요”라고 했다. “그래요?” 한바탕 웃은 유 감독이 말한다. “알고 보면 편한 사람인데…. 그래도 신 감독님 악질에는 아직 못 미치죠.”
○ ‘진정성이 바탕’…선수의 마음을 잡아라
버스 출발 시간 앞당기고, 선수 사생활 통제하고, 훈련 강하게 시켜 이길 수 있다면 어느 감독이 우승을 못할까. 두 명장에게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빈틈 보이지 않기’와 ‘진정성’이다.
▽신 감독=감독을 하면서 아침 훈련에 늦은 적이 없다. 불가피한 일로 늦게까지 술을 먹으면 사우나에서 뺨을 때려가며 정신을 차린다. 감독이 불성실하면 선수들이 가장 먼저 안다. 프런트와도 잘 협조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감독은 영(令)이 설 리 없다.
▽유 감독=나도 아침 훈련에 가장 먼저 나가려고 노력한다. 술 잘 깨는 체질인 신 감독님과 달리 술 마시면 다음 날 많이 힘들다. 그래도 냄새 안 풍기려고 갖은 애를 쓴다. 사람이 어떻게 빈틈이 없을 수 있나. 그럼에도 빈틈을 안 보이려 노력하면 선수들이 이를 알아주는 것 같다.
▽신 감독=감독의 권위는 진정성에서 나온다. 그것이 전달되면 선수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팀 퍼스트. 프로는 팀이 먼저다. 팀에 대한 헌신과 배려가 없다면 제아무리 스타라도 필요 없는 존재다. 감독부터 헌신해야 한다.
▽유 감독=팀은 작은 사회다. 그 안에서 인간관계 및 협동과 배려를 배운다. 언젠가 선수들이 체육관에 가면서 침을 뱉어 놓은 것을 봤다. 당장 불러 모아 혼쭐을 냈다. 기량은 나중 문제다. 건강한 사회인으로서의 기본이 먼저다.
▽신 감독=유 감독이 배구를 했다면 삼성화재의 6연패는 어림없었을 것이다. 농구를 한 게 정말 다행이다.
▽유 감독=오늘 많이 배웠다. ‘고급 정보’를 너무 많이 알려 주시는 바람에 모든 팀이 다 따라 할 것 같아 걱정된다(웃음).
두 감독 모두 배구와 농구 외의 다른 일에는 눈 돌릴 겨를이 없다고 했다. 무엇인가에 모든 것을 건 이들에게 낭만이란 애당초 기대할 수 없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기에 삼성화재와 모비스는 강팀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명장의 대화는 네 시간 넘게 이어졌다. 별로 닮은 곳이 없어 보였던 두 감독은 그새 ‘도플 갱어’(분신)라도 된 듯했다. ‘합리적 악질’과 ‘독재자’를 자처하는 두 남자는 조만간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다른 모든 팀이 더 긴장해야 할 것 같다.
이승건·이종석 기자 why@donga.com
▶ [채널A 영상]‘코트의 명장’ 두 감독이 말하는 특별한 리더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