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세계사/스티븐 솔로몬 지음/주경철 안민석 옮김/704쪽·2만8000원/민음사
베네치아 공화국은 10세기부터 뛰어난 해상 전력과 상업을 통해 지중해 유럽의 부활을 이끈 도시국가였다. 아드리아 해 위쪽 습지와 섬에 자리 잡은 베네치아는 초기부터 물과 ‘결혼’한 상태였다. 실제 물과의 결합을 기념하는 큰 축제가 매년 열리는데 이 축제는 새 반지를 물에 던지는 것으로 절정을 이룬다. 동아일보DB
본래 인간은 물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우리의 체중 가운데 3분의 2가 물이다. 우리는 하루의 시작을 몸 안의 물을 배설하면서 시작하고 대체로 매일 2∼3L의 물을 마시며 살아간다. 그러고 보면 물 없이는 하루도 제대로 살기 어려울 텐데, 정작 물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물과 관련한 인간과 국가의 흥망성쇠를 찾아가려 시도한 점이 참신하게 다가온다. 게다가 이를 광범위한 세계사의 형식으로 요리해냈다는 점은 더욱 흥미롭다. 저자는 전문 역사학자가 아니라 저널리스트지만 현대 사회가 직면한 핵심 문제를 광범위하고도 심층적인 연구조사를 통해 역사적 통찰력으로 풀어냈다. 게다가 번역자는 해양 문명사의 권위자인 주경철 교수와 안민석 박사다.
이후 8세기부터 이슬람 제국이 지리적으로 급속히 팽창하는 과정에서 비아랍 세계의 피정복민을 이슬람 사회로 흡수하는 데 비교적 관대했던 요인 중 하나를 물 부족 현상에서 찾는다든가, 동서양을 이어주는 인도양 교역로를 선점했던 이슬람 세력이 결국 기독교 세력에 그 주도권을 빼앗기는 까닭이 이슬람 문명이 근본적으로 육지 지향적이어서라고 해석하는 대목 등은 논쟁의 여지를 던지는 신선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중국사를 연구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중국의 수로 체계, 특히 대운하의 개통과 이에 대한 집착이 지닌 장단점을 로마, 미국과의 거시적인 비교를 통해 제시한 부분이다. 저자는 중국이 6세기 약 1800km에 이르는 대운하의 건설을 통해 건조한 북방 지역과 수량이 풍부한 남방 지역을 새롭게 통합하는 데 성공했고, 이것이 이후 13세기까지 이어지는 경제 혁명과 세계 문명의 정점에 도달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한다.
아울러 중국과 달리 로마 제국을 통합할 대규모 수로가 없었던 유럽은 서로 경쟁하는 국가들로 분열되고 침체된 암흑기가 장기간 지속됐다고 보았다. 대운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은 곧 내부적인 성장과 안정을 의미했기에 14세기 이후 중국은 내향적이면서도 자급자족적 방향으로 흐른 반면에 유럽은 이슬람 세력과의 경쟁 및 새로운 돌파구 마련을 위해 15세기 이후 바다에 적극적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고 비교했다.
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