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
‘비창 교향곡’ 1악장(①)과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②) 악보. 차이콥스키는 같은 길이의 음표 7개가 죽 내려가다 끝이 올라가는 음형을 슬픔의 표현에 자주 사용했다. 오페라 ‘예프게니 오네긴’ 중 ‘렌스키의 아리아’(③)에서 이는 변형된 형태로 등장한다.
자살이 맞을까요? 죽기 직전 차이콥스키의 심리 상태를 살펴보면 단서를 얻을 수 있을 듯합니다. 그가 일기나 편지에 이를 직접 암시한 내용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비창’의 선율에 사용된 시나 ‘가사’를 알아보면 어떨까요?
“농담이겠지…‘비창’은 독창이나 합창이 들어가지 않은 교향곡인데 무슨 가사가 있다고.” 맞습니다. 그러나 단서가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광고 로드중
그는 초기 가곡인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 관현악 모음곡 3번 1악장 ‘비가’(엘레지), 교향곡 4번 2악장에서 이런 선율을 썼습니다. 예부터 하행(下行)음형은 탄식, 슬픔, 애도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지만 차이콥스키의 이 음형은 특히 개성이 뚜렷합니다. 오페라 ‘예프게니 오네긴’에 나오는 렌스키의 아리아 ‘어디로 갔나, 내 아름다운 날들은’은 끝이 들리지 않고 첫 음이 살짝 긴, 변형된 형태로 등장합니다.
이제 ‘비창’과 비슷한, 이 곡들과 관련된 글귀들을 죽 병렬해 볼까요.
“모든 즐거움에서 떨어져 나와, 나는 홀로.”(‘그리움을 아는 이만이’ 가사)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모든 것이 암흑 속.”(‘렌스키의 아리아’ 가사)
광고 로드중
<음원제공 낙소스>
저는 요즘 차이콥스키의 비감한 선율을 실컷 듣고 있습니다. 동아일보와 서울시 주최로 열리고 있는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19∼27일)에서 유독 많은 참가자가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와 ‘렌스키의 아리아’를 예선 과제곡으로 준비했거든요. 슬퍼지냐고요? 글쎄요…. blog.daum.net/classicgam/2
유윤종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