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 산업부 기자
뜬금없이 고전수필, 조침문(弔針文)의 문체를 빌려 옷장 속 옷들을 ‘애도’하고 싶어진 것은 속을 알 수 없는 요즘 봄 날씨 때문이다.
최근 이제야 봄이 왔나 싶어 겨우내 장롱에 보관해 둔 7분 소매 봄 코트를 입고 출근했다가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 한창 따뜻하다 이내 냉혹한 바람을 몰아치거나, 연둣빛 4월에 갑자기 눈발을 흩날리는 하늘은 ‘멘붕’ 상태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서울 여의도 IFC몰 관계자는 최근 열린 여의도 벚꽃 축제 덕에 평소보다 매출이 30%가량 늘었다고 전했다. 인파로 인해 자연스레 수요가 몰린 줄 알았는데 쌀쌀한 날씨 덕도 적잖았단다. 날씨가 매섭다 보니 따뜻한 실내로 찾아든 것이다.
이미 패션 업계에서는 SS(spring·summer) 시즌과 FW(fall·winter) 시즌으로 구분되는 4계절 패션 가운데 봄과 가을 패션이 사라져 버렸다는 얘기가 나온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봄여름 상품을 각각 5 대 5 비중으로 만든 한 대형 패션업체는 올해 이 비중을 3 대 7로 바꿨다. 그나마 만든 봄옷들도 4계절 구분 없이 입을 수 있는 기본 스타일이거나, 안감 또는 소매를 탈·부착할 수 있는 ‘트랜스포머’형이다.
봄과 가을은 사라지고 여름과 겨울은 아주 덥거나 추워지다 보니 관련 업계도 대응책 마련에 고심이다.
최근 직접 시연해 보여야 진가를 안다며 신제품 샘플을 들고 찾아온 아웃도어 업계 관계자는 봄이 아닌 한여름 제품을 갖고 나왔다. 그는 “봄 시즌은 사실상 없어졌다고 보고, 곧바로 찾아올 여름 아이템을 선보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피부 온도를 빠르게 낮춰주는 고기능성 의류를 소개했다.
가장 산뜻하고 아름다워야 할 봄을 잃은 것은 우리 모두에게 내려진 ‘형벌’이다. 빼앗긴 봄의 향수를 떠올리다 보니 나비처럼 가벼워야 할 이 계절이 천근처럼 무겁게 느껴진다.
김현진 산업부 기자 brigh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