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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北근로자 철수]北 벼랑끝까지 간 벼랑끝 전술… 최고수위 위협

입력 | 2013-04-09 03:00:00

■ “사업 잠정중단”… 가동 9년 만에 존폐 갈림길




북한이 ‘개성공단 폐쇠 검토’를 일방적으로 발표한 8일 개성공단으로 향하는 관문인 경기 파주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 게이트는 오가는 차량 없이 한산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로 행복한 통일시대를 만들어가겠다’는 전광판 문구가 현실이 되는 날은 언제쯤 올 수 있을까. 파주=원대연 기자 yeon@donga.com

2월 초부터 시작된 북한의 개성공단 위협이 정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 일부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특유의 ‘벼랑 끝 전술’이 그야말로 벼랑 끝까지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8일 ‘북한 종업원의 전원 철수와 개성공단 존폐 검토’를 선언함으로써 그동안 예고했던 개성공단 가동 중단으로 가는 절차를 본격적으로 밟기 시작했다. 개성공단은 2004년 첫 조업을 시작한 이래 한 번도 가동을 멈추지 않았다. 북한의 1∼3차 핵실험과 천안함 폭침 및 연평도 도발 때도 문을 닫지 않았다. 따라서 폐쇄될 경우 남북 모두에 미칠 정치적, 경제적 파장이 작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 대화와 협상을 끌어내려는 벼랑 끝 전술

2009년 3월에도 개성공단 출입이 차단됐지만 ‘키리졸브’ 한미연합군사연습이 끝나자 차단 조치는 곧바로 해제됐다. 올해 차단 조치의 특징은 △키리졸브 연습이 끝난 뒤인 4월에 시작됐고 △북한이 한국의 언론보도 같은 비본질적 문제를 핑계로 삼았다는 것이다.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는 8일 담화에서 유사시 개성공단의 인질 구출작전을 언급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을 맹비난하고 “공업지구가 동족대결과 북침전쟁도발의 마당으로 악용되는 것은 비극이며 그런 개성공업지구는 없는 것보다 못하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개성공단을 위협했기 때문에 나온 한국 측 반응을 오히려 공단 폐쇄의 빌미로 역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결국은 남북 관계를 극단 대립 양상으로 가져가겠다는 의도로 예상보다 속도가 빠르고 수위가 높다”며 “북한의 행동이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양상”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종잡을 수 없는 행동에 대해 남북포럼의 김규철 대표는 “뉴욕 채널을 통해 10일까지 북-미 대화에 응할지 여부를 회신하라고 주문한 북한이 미국의 반응을 이끌어 내기 위해 한반도에서 위기 국면을 조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북한이 지난해 8월 북-미 접촉에서 거론됐던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예비회담을 지금 하자고 요구하고 있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북-미 10일 대화 제의설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아는 바 없다”고 말했지만 그 가능성을 완전히 부인하지는 않았다.

북한이 한국 정부나 언론의 태도 등을 이유로 개성공단의 위기를 고조시키는 것은 ‘포장된 명분’일 뿐 북한 스스로 정한 계획표대로 위기상황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2월 6일 개성공단에 대한 위협적 언급을 시작한 북한은 마치 누군가가 반응을 보여 주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곧장 행동에 들어가지 않고 통행 차단과 폐쇄 카드를 흔들어 왔다.

김양건의 담화처럼 북측 근로자를 철수하지 않더라도 방문 차단 조치가 이어지면 개성공단은 원부자재 부족으로 당장 9일부터 ‘사실상 전면 중단’될 상황이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이 용납할 수 없는 이유로 개성공단 출입 차단을 시작한 만큼 먼저 통행 정상화를 하지 않는 한 대화 요청이나 특사 파견은 제의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방침이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회의에 출석해 “지금 상황은 대화를 통한 협상으로 해결될 국면이 아니다”면서 “북한이 개성공단으로 들어가는 우리 측 인원을 허용하면 원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므로 협상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 북-북 갈등에서 군부 강경파가 완승했나

김양건이 8일 오전 9시 개성공단을 방문했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만 해도 한국 정부 안팎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쏟아졌다. 양복 차림의 김양건은 미국 자동차회사 포드의 링컨콘티넨털 승용차를 타고 공단을 방문했다. 김양건은 홍양호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장(전 통일부 차관)과 의례적인 악수를 나눴다. 입주 업체들 사이에서는 ‘강경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서라면 김양건이 아닌, 군부 강경파가 군복 차림으로 방문했을 것’, ‘김양건이 홍 위원장과 악수한 것은 유화 제스처 아니냐’는 기대감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날 조선중앙통신에서 발표된 김양건의 강경한 담화는 이런 기대를 완전히 깨뜨렸다. 김양건은 당 국제부장과 통일전선부장을 역임한 대표적 대화파다. 이명박 정부에서 남북 정상회담 개최 협상까지 담당했던 그에게 ‘개성공단 폐쇄’ 통첩을 맡김으로써 북한은 한국에 ‘더는 대화론자를 쳐다보며 상황 변화를 기대하지 마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 내 북-북 갈등에서 결국 온건 협상파가 강경 군부에 밀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지난해 12월 장거리로켓 발사 때부터 2월 3차 핵실험에 이르기까지 군부 중심의 강경파와 대외 관계 악화를 우려하는 민간 출신 온건파 사이의 갈등이 많았다”고 말했다. 특히 연말부터 예고했던 도발들이 모두 행동으로 옮겨지면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강경파에 의지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북한 내부의 대화파는 개성공단 설립 당시부터 군부 강경파로부터 “달러 몇 푼 손에 쥐어 보자고 군부대를 후퇴시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식의 공격을 받아 왔다. 김양건이 이날 담화에서 “우리가 전략적 요충지를 내어준 것은 참으로 막대한 양보를 한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배경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군의 주요 남침로인 ‘개성∼문산’ 루트를 담당하던 인민군 6사단, 64사단 등은 개성공단이 들어서면서 송악산 이북과 개풍군 일대로 후퇴했다. 한 대북 소식통은 “이번 조치로 그 군대들이 다시 개성으로 밀고 들어올지도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

조숭호·손영일 기자 sh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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