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18조 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을 조성해 은행과 카드회사, 저축은행, 대부업체 등 여러 곳에 빚을 진 저소득 다중채무자의 원리금을 줄여주기로 했다. 이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국민행복기금을 설치하겠다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1호 공약이었다. 지원 대상은 지난해 8월 말 이전에 빚을 연체한 사람 중에서 채무 조정 이후에 적극적으로 빚을 갚으려 한 사람으로 제한한다. 정부 지원을 노리고 일부러 연체한 경우는 제외하겠다는 의미다.
그래도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 논란은 남는다. 나라가 빚을 탕감해주겠다고 하면 빚을 갚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기금 출범을 기다리며 빚을 안 갚는 채무자가 늘어난 것은 당연하다. 이자만이 아니고 원금의 일부까지 탕감해주는 것도 논란거리다. 2003년 신용카드 위기 때도 대책 발표를 앞두고 연체율이 높아졌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 농어촌부채를 탕감해줬으나 효과는 미미했고 ‘농협 빚은 안 갚아도 된다’는 풍조를 조장했다. 채무자 중에는 집값이 오를 것을 기대하고 대출 받아 집을 산 사람도 많다. 이른바 ‘하우스 푸어’ 중 상당수가 그렇다. 투자 실패에 따른 빚까지 줄여주는 건 곤란하다.
채무자뿐 아니라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도 우려된다. 부실채권을 나라가 인수해주겠다는데 어떤 금융기관이 대출심사를 까다롭게 할 것인가. 이미 외환위기 때 확인된 사실이다. 대출 담당자는 ‘신용이 떨어지지만 잘 아는’ 사람에게 대출해주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생색내기 좋고, 사례비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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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지만 성실하게 빚을 갚는 사람의 부담을 줄여주는 역차별 해소책도 꼭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선거 때마다 탕감을 기대하면서 ‘일단 버티자’는 사람이 늘어난다. 기금 자체의 부실화도 문제다. 탕감 받은 채무자들이 나머지 빚을 갚지 않으면 세금을 더 넣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국가 재정이 버틸 수 없다. 현재 가계빚은 국내총생산(GDP)의 86%에 이르는 1000조 원 규모로 한국경제의 폭탄이다. 국가적 구제가 필요한 시점이긴 하다. 그러나 엉성한 빚 탕감은 모럴해저드를 일으켜 금융질서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민행복기금은 양날의 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