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해 논설위원
그는 인사청문회도 하기 전에 사퇴했다. 김종훈이 한국 관료사회에 어떻게 적응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어졌다. ‘아메리칸 드림’의 아이콘이었지만 조국의 검증은 혹독했다. 좋은 부모 만나 조기유학을 떠난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 따라 미국 땅에 건너가 흑인 동네인 메릴랜드 주의 한 슬럼가에서 잡초처럼 살았다. 오로지 공부와 기술로 자수성가(自手成家)한 사람이다. 한국의 미래 먹거리를 찾아 달라는 박 대통령의 요청을 받고 설레는 마음으로 한국에 왔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창조과학부는 조직도, 인력도, 아무런 실체도 없었다. 중앙정보국(CIA)의 자문에 응한 경력을 마치 간첩인 양 몰아세웠고, 외환위기 당시 달러가 모자라 발을 동동 굴렀을 때 그가 달러로 투자한 한국 부동산엔 ‘투기’라는 혐의가 씌워졌다. 장롱 속 금 모으기 운동은 애국이요, 그가 달러로 산 부동산은 ‘투기’라며 손가락질했다. 미국 시민권 포기 대가로 1000억 원의 세금 납부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그에게 “가족들은 여전히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지 않느냐”며 색안경을 쓰고 봤다. 인터넷에선 의혹이 사실로 난도질당했다. 인사청문회준비팀은 보름 동안 곁에서 청문회를 준비하면서 의혹에 대한 해명보다는 창조경제를 어떻게 설계해 나갈지에 대한 정책 준비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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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글로벌 인재들이 김종훈 낙마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 답답하다. 열네 살 때 떠난 조국에 봉사하겠다고 온 ‘까만 머리 미국인’을 매몰차게 걷어차 버린 나라가 한국이다. 그가 한국에 있던 보름 동안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고민을 했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다. 어렵사리 스카우트해 놓고도 그를 망망대해(茫茫大海)에 던져 놓은 채 살아서 돌아오라고 방치한 대통령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모든 일이 정부조직법이 국회에서 표류한 보름 사이에 벌어졌다. 그가 한국을 떠나면서 한 말은 “아내와 딸들이 울고 있다”는 울분이었다. 다른 장관 후보자와 달리 그는 미국인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로부터, 또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했다. 똑똑한 천재 한 명이 수백만 명을 먹여 살리는 지식사회다. 민간기업에서는 해외에서 영입한 인재 관리를 이처럼 서툴게 하지는 않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계 미국인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을 세계은행 총재에 발탁하고 미국인들이 환영한 것과는 너무 대비된다. 어설픈 ‘애국주의(愛國主義)’가 내친 김종훈이 못내 아쉽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